2024-04-26 01:49 (금)
나만의 산
나만의 산
  • 한중기
  • 승인 2017.01.24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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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기 두류인성교육연구소장
 한국인에게 산은 유비쿼터스 같은 존재다. 언제 어디를 가든 산 없는 곳이 없다. 저마다 고향 뒷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것으로 믿고 있다. 주말마다 산으로 가는 행렬이 끊이질 않는 것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산에서 나 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살아서도 산에 가고, 죽어서도 산으로 간다. 산은 단지 자연의 산일 뿐 아니라 사람의 산이고, 삶의 산이다. 역사와 문화가 있고 사상과 철학이 담긴 곳이다. 산에 기대어 살다 육신이 묻히고 영혼마저 깃들게 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해서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나만의 산’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선비들은 더했다. 산을 닮고자 했고, 산을 통해 성찰하고자 했다. 명산대천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두고 싶어 하는 산을 정해 자주 찾거나 아니면 아예 그곳으로 거처를 옮긴 이도 있었다. 남명 조식이 대표적이다. 지리산을 즐겨 찾았던 남명은 환갑 나이에 천왕봉이 바로 올려다보이는 덕산에 정착했다. 지리산 천왕봉이야말로 자신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도덕적 위치라 생각했다. 남겨진 수많은 시문을 보면 그의 사상적 실존적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덕산 계정의 기둥에 쓴 시문이다.

 천석들이 종을 보라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네

 어찌하면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천석들이 종처럼 의연함을 지키고 싶은 그의 이상을 엿볼 수 있다. 남명사상의 중심에 지리산이 있었던 것이다. 후학들도 그의 굳세고 강인한 사상을 본받아 ‘경’과 ‘의’를 실천하면서 임진왜란 당시 창의의 깃발을 올려 나라를 구하는 원동력이 됐다. 남명의 지리산 정신이 나라를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명이 지리산이라면, 퇴계 이황은 청량산으로 표현된다. 조선 유학의 양대 석학의 지극한 산사랑은 산의 이름값을 더 높였다. 명산도 이름난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중국의 적벽도 소동파라는 걸출한 문인이 없었다면 높은 산과 큰 강에 불과했을 것이라 했다. 합천의 가야산 역시 최치원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경관 좋은 산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남명이 있어 천왕봉이 더 빛나듯 청량산은 퇴계가 있어 더 유명해졌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퇴계가 사랑했던, 그래서 스스로 ‘청량산인’이라 호를 지어 부르며 산과 하나가 되고자 한 덕분에 명산 반열에 올랐다. 숙부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그가 청량산을 오가던 길이 지금도 ‘예던길’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이 높다. 그의 사상적 기반이 됐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어 훗날 유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청량산은 퇴계의 정신적 고향으로 격상돼 명산이 된 것이다. 자연의 산에서 사람의 산으로 바뀌는 변곡점에 퇴계가 있었던 것이다.

 남명, 퇴계와 동시대를 살았던 갈천 임훈이 사랑했던 산은 덕유산이다. 덕유산 향적봉을 오르면 거창선비 갈천이 먼저 떠오른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왼쪽 편에 위치한 경상좌도에 퇴계 이황, 회재 이언적이 있었다면, 경상우도에는 남명 조식과 갈천 임훈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학문이 뛰어난 유학자다. 갈천의 학문 요체는 ‘정심수신(正心修身)’이다. 나라가 극도로 혼란했던 조선 명종, 선조 때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바르게 닦아 만백성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며 대학에 나오는 ‘정심수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갈천은 “임금이 백성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성찰하지 않고, 임금 스스로 정심수신에 힘쓰지 않는 병폐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럽다”며 하찮은 백성의 말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덕유산은 이후 지식인과 민중이 새 세상을 여는 변혁의 산실이었다. 농민항쟁과 동학혁명, 항일의병과 독립운동의 성지였고, 빨치산의 주요 근거지였다. 민중의 보루였다. 넉넉한 품으로 사람을 살리고 맑은 정신을 일깨워 주는 산으로 남아있다.

 산은 덕을 베풀고 사람은 덕을 쌓는다고 했다. 삶과 죽음, 세상의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산처럼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나만의 산’을 찾아 길을 나설 일이다. 자연이 보이고, 역사ㆍ문화가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자신이 보인다. 대한 추위가 몰고 온 한파와 눈보라를 헤치고 지난 주말 덕유산 향적봉을 오르면서 느낀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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