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과 한국 정치
책 한 권과 한국 정치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1.05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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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한국 정치가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정치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즉각적이고 넓기 때문에 잊고 살아도 알게 모르게 자신을 옭아맨다. 정치가 태평성대를 줄 때는 나라님을 잊고 살아도, 가렴주구의 원성이 높을 땐 나라님을 원망한다. 지금 한국 정치는 비정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을 원망하는 소리를 입에서 내뱉는다. 태평성대가 아니라 가렴주구의 세상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통 생활을 하려면 눈앞에 펼쳐지는 정치 상황 때문에 열 받기 일쑤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어내리기 힘든 세상을 만든 정치인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세상이 물 흐르듯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고 역류하는 세상을 보면 피가 거꾸로 흐른다. ‘거꾸로가 희망이다’고 말하면 차라리 편하다.

 정치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원래 정치는 그렇고 그렇다는 자기암시적 예언(self-alluring prophecy)이 적중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맨날 당을 지어 싸우면서 생산적인 행위는 하지 않고 당과 개인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모양새가 국민들 머리에 각인돼 있다. 정치인이 바른 소리를 해도 다른 저의가 있다고 판단한다. 국회의원들이 이권을 대변하고 큰돈 작은 돈을 받아 낙마하는 경우를 늘 보기 때문에 새삼스럽지 않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사업 비리에 연루된 한 국회의원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다. ‘그 많은 엘시티 비자금이 어디로 갔냐’며 다음은 어떤 국회의원이 소환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해 한국 정치는 불확실성만 확실하다. 지금 정치는 좌판에서 팔딱거리는 마치 생선 같다. 분명 살아서 움직이는데 곧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파르르 떨며 명을 다할 태세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한숨을 몰아쉬기도 이제는 새롭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빨리 치러질 게 예상돼 여야가 벌써 집안싸움이 한창이고 제3지대를 두고 여러 인사들이 저울질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세워 놓고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탈당을 요구하며 조기 전당대회 소집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헌 보고서’를 두고 당내 힘겨루기뿐만 아니라 다른 당은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치는 권력을 지향하는 속성이 있다. 권력은 실제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고 잡는 사람이 주인이다. 정치권 앞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를 뼛속 깊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요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측 사람들은 바쁘다. 예전 왕이 행차하기 전에 길을 닦았던 것처럼 그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사전작업을 한 게 분명하다. 그가 오는 12일 귀국한다. 웬만한 사람은 예상할 수 있다. 반기문 전 총장이 들어오면 정치권은 다시 합종연횡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을. 이미 대선 경주에 앞서 있는 문재인 전 대표는 견제구를 날리기에 바쁘다. 안철수 전 대표도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는 권력의 핵이던 대통령의 추락을 보고 있다. 막강한 힘도 촛불이 부는 대로 일렁거리고 있다. 요즘 공자 말이 유행한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라는 뜻인 수가재주역가복주(水可載舟亦可覆舟)다. 어려운 한자 말이지만 곱씹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대통령의 힘이 쪼그라드는 걸 보면서 대통령 자리를 탐하던 사람이 혹시나 성난 물에 뒤집힐 수 있다고 뒤로 물러서는 경우는 아직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그 무소불위의 힘을 덧입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다. 권력의 무상을 읊조려도 그 권력을 일단 잡고 보자는 심사가 팽배해 있다.

 한국 정치가 이 지경이 됐다면 책임지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줄을 서면 한참 길어야 한다. 하지만 책임은 고사하고 면피하려고 얼굴을 벌겋게 하고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지금 한국 정치는 희망을 갈기보다 ‘판때기’만 갈고 있다. 큰 정치판이 서기 전에 늘상 있는 줄서기다. 이번에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메가톤급 변수로 인해 명분을 달았지만 그 속을 들어가면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은 깊다. 그 고질적인 병은 치료할 수 없다는 자기 암시적 예언은 더 무섭다. 정치는 늘상 싸우고 줄 서기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걷어내기가 힘겹다. 정치가 보통 사람들이 편하게 책 한 권을 끝까지 못 읽게 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면 심각하다. 조기 대선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극심한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터지기 직전이다. 온갖 잔꾀가 난무할 이 판에서 국민은 없다. 국민은 강 건너 불구경하다가 만들어진 구조에 한쪽으로 표를 몰아주면 된다.

 정치판은 기울어진 운동장같아 좋은 쪽보다 나쁜 쪽으로 자동적으로 사람들이 마음을 둔다. 그래도 이판사판 좋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무게를 실어주면 혹 좋아지지 않을까 라는 자기실현적 암시(self-fulfilling prophecy)에 돈을 거는 ‘투기’도 괜찮다. “모냐? 도냐?” 속는 셈 치고 믿고 걸어 행운을 얻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 또한 복불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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