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9:23 (금)
말이 곧 그 사람이다
말이 곧 그 사람이다
  • 김혜란
  • 승인 2017.01.04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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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공자의 가르침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없고,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그중 마지막 구절을 자꾸 중얼거리게 된다.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言 無以知人也)는 구절이다. 말하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면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혹은 상대방의 말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다르게는 성현의 말을 따라 살라는 말이다. 해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맞는 말이다. 요즘 같으면 ‘모든 것이 말장난’이란 뜻으로도 해석가능하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 관련 당사자들과 증인, 참고인들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말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국회청문회장에서 쏟아진 말들 중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모른다’는 표현이다. 다양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같은,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증인들은 특히 이런 종류의 말을 되풀이했다.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모릅니다’, ‘알 수 없습니다’, ‘알지 못합니다’라는 표현만 썼다. 덴마크에서 체포된 정유라 역시도 자신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또박또박 대답하지만, 최순실 관련 질문에는 계속 ‘모른다’는 말만 하고 있다. 법을 아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른다’와 ‘알 수 없다’와 ‘알지 못한다’는 어떻게 다를까? ‘모른다’는 것은 전혀 관계할 기회조차 없다는 표현이고, ‘알 수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는 표현이고, ‘알지 못한다’는 표현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만, 자신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표현일 것이다. 복잡하지만 법의 망을 피해갈 수 있는 말들을 최대한 골라서 했다. 천재적인 두뇌로 법을 공부하고 알게 된 표현법을, 어떻게 자신들의 죄를 감추는데 쓰는지를 확인하고 절망한 순간이었다.

 영화 ‘내부자’에서 충격적인 대사로 관심을 모았던 이강희(백윤식 분) 논설주간은 ‘국민은 개돼지’란 표현 외에 다른 대사도 썼다. 검찰에 출두해서 검사에게 심문받을 때의 말이다. 얼른 듣기에는 같은 말인데, 조금씩 다른 표현을 언급했다. ‘보여진다’와 ‘볼 수 있다’, ‘볼 수 없다’와 ‘보이지 않는다’ 등이다. 서민의 눈으로 볼 때는 배운 지식을 이용해서 말장난으로 권력의 명을 이어가는 추악한 사람들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이번 국정농단에 국민을 분개하게 하는 당사자와 증인, 참고인의 변호와 비호(?)를 맡은 사람들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변호사나 검사, 판사가 되겠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똑똑하고 착하며 항상 공정하고 정의롭고, 약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법으로 도움을 주는 직업이라고 배웠으니까.

 이제는 학교에서 배웠던 많은 것들을 믿지 않게 됐지만, 무의식 속에는 법으로 세상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공명정대한 세상을 만드는 직업이 그들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청문회에 나온 법 관련 공부를 한 사람들이 결정적인 행동을 감추고 누가 봐도 잘못인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에 충격받았다.

 특히 변호사는 착한 사람 편들어 주는 직업이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선한 사람과 악인 구분 없이 사건을 의뢰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직업이었다. 사건에 대한 논리적 분석능력을 지녀야 하고,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통해 의뢰인이라면 무조건 유리한 변론을 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꼭 공정하고 정의로운 증거는 없다. 오히려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불리한 말을 못하도록 거짓말도 조언하고, 말 한마디로 법망을 피해가도록 교묘한 표현도 충고한다. 변호사 외에도 사건에 대해 법에 어긋나는지 아닌지를 조사하고 재판과 무죄여부를 판단하는 검사, 검사와 변호사의 논쟁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판사들, 그들 중의 다수가 오랫동안 정의를 무시하고 거짓과 ‘말장난’으로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결론을 생각할 수 있다.

 정유라의 가짜 답안지 작성을 지시한 류철균(필명 이인화) 교수의 소설 중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책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대사에서 제목을 따와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는지 아는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지름길이다. 공자의 말대로, 말을 알지 못하면 남뿐만 아니라 자신도 알 수 없다. 남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일도 허망하다. 말은 그 사람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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