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알고 있다
촛불은 알고 있다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12.14 2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정창훈 객원위원
 지난 1월 중순 진주 청곡사에 갔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느끼는 추위는 온몸을 떨게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도 모두 얼었는데 사찰 내 화장실 변기 사이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다. 다행히 그 열 때문인지 화장실 사용에 불편함이 없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작은 촛불의 열기가 겨울 산사를 따뜻하게 했다. 생각할수록 신기해서 지역 문화센터에 개설된 양초 만들기 과정에 등록했다.

 양초 만들기는 집에서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종이컵, 소이 왁스나 천연 밀랍 100g, 초 심지, 몰드, 아로마 오일 2g을 준비하면 된다. 아로마 양초는 아침과 저녁에 기온이 떨어질 때 기관지 호흡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공기 중 세균 및 바이러스를 없애주고 소취효과도 얻을 수 있다. 당시에는 원룸에서 생활을 했는데 간단한 찌개 요리만 해도 방안 가득 음식 냄새가 베였다. 다행히 직접 만든 양초를 30분 정도 켜두니 냄새가 많이 사라졌다. 공기정화를 도와주는 아로마 양초가 가져다준 기쁨이었다.

 일상에서 소소한 감동을 준 촛불을 무겁게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촛불의 쓰임은 어둠을 밝히기 위함이다. 촛불은 밝은 세상, 따뜻한 인간 세상, 맑은 지구를 위한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조상들은 일상에서 깨끗함과 믿음에서 정성을 가장 큰 가치로 여겼다. 깨끗하다는 청정과 정성을 다하는 숭고한 미덕인 치성이다. 유구한 농업 문화의 유산이 청정과 치성인데 바로 우리 민족의 믿음이 됐던 것이다.

 이 땅에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정화수를 정성껏 챙기고, 지극 정성으로 소원하는 바를 이뤄달라고 기도했다. 정화수 앞에는 은은한 촛불을 밝히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가족의 건강, 집안의 화목, 그리고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

 초는 몸과 심지로 돼 있다. 여기 심지에 불을 붙이면 ‘초의 불’인 ‘촛불’이 된다. 초의 몸은 우리의 육체다. 초의 심지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와 마음만 있는 초는 어둠을 밝힐 수가 없다. 불이 안 켜진 초를 들고 어둠 속으로 나아가면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혀 다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초의 심지인 우리의 영혼에 불을 붙이면 어둠은 사라지게 된다. 내 마음의 심지에 켜진 불은 나 자신과 더불어 남의 앞길도 밝혀 줄 수 있으며, 남의 마음에도 불을 붙여 줄 수 있다. 우리가 촛불을 켜는 이유다.

 전 세계 고대의 신전에는 어둠을 밝히는 기름등잔들도 있지만 제대에는 향과 함께 거의 초를 사용했다. 유럽을 여행하면 오래된 성당을 방문하게 된다. 예외 없이 성모상 앞에는 작은 촛불들이 무리를 이뤄 잔잔하게 타오르는 향연을 볼 수 있다. 촛불은 명상과 서정과 기도를 도와주는 희망과 아름다움의 이미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촛불은 하나라도 온전한 빛을 세상에 발하지만 많은 촛불이 타올라도 처음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녹여 빛을 내고 세상을 밝힌다.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 아주 연약한 존재지만 종교행사나 제사 등에서 꼭 켜놓는다. 그래서 보통 ‘희생으로 봉사’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간호사들이 나이팅게일 선서식 때 손에 촛불을 든 채 하얀 가운을 착용하는데, 촛불은 주변을 비추는 봉사와 희생정신을, 흰색 가운은 이웃을 따뜻하게 돌보는 간호 정신을 상징한다.

 촛불집회는 비폭력 시위 방법 중 하나다. 외국에서 일어난 유명한 촛불집회 중 하나는 지난 1978년 샌프란시스코의 시의원이었던 하비 밀크가 총격으로 사망한 후 3만 명이 모여 추모를 한 집회이다. 대중화된 시위는 1989년 슬로바키아 독립요구 촛불집회다. 당시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립하기 위해 체코의 수도 프라하와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 지역에 몰려와서 독립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있었다.

 한국 최초의 촛불집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월간 ‘말 1997년 6월호’를 보면 지난 1987년 6월 항쟁 때 이미 촛불집회가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부산에서 독재 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는 촛불시위대가 전경에 맞섰다고 한다. 이후 2002년 미선-효순이 참변 사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협상 반대 집회, 2011년 6월 반값 등록금 공약 논란, 2013년 6월부터 세월호 침몰 의혹 관련과 한미FTA 반대 등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희생, 봉사와 사랑으로 상징되는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빛을 내고 세상을 밝힌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드러난 관련자는 극히 일부다. 6차, 7차 집회가 열리도록 진정어린 참회를 하지 않는 것은 박근혜를 비호하는 부도덕한 굿판의 세력들이 여전히 춤판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들이 모여 거대한 빛의 강을 이룰 때 촛불은 알고 있다. 촛불의 기운은 어떤 화려한 조명보다 더 깊이 멀리 퍼져나가 세상을 암흑에서 구한다. 어둠의 정치, 부패한 청탁과 이권개입, 권력의 남용, 음모, 부도덕한 권력자들의 착각으로 국민들이 더 이상 고통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저렇게 작은 촛불이 어쩌면 이렇게 멀리까지 비쳐 올까! 촛불은 국민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