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드리운 칙칙한 그림자
‘광장’에 드리운 칙칙한 그림자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12.08 2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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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분출하고 있다. 촛불이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고, 동일한 구호를 한목소리로 부르짖는다. 우리는 불행한 세대다. 광장에서 하나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모이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의 민주주의를 내세워 국회의원 300명이 정치 행위를 하는데, 그들이 못 미더워 광장으로 몰려나갔다. 1979년 ‘서울의 봄’을 다시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유독 우리나라 정치 시계만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가 군부독재 이후 주권이 국민에게 돌아오고 국민의 뜻을 따라 국회의원들이 정치 행위를 해왔는데 지금 광장은 너무 어지럽다.

 최인훈 소설 ‘광장’은 광복 이후 남북 분단에 따른 이념의 분열상을 보여준다. 주인공 이명준은 생각에만 머문 남북 문제가 현실 문제로 다가오자 북한을 택하지만 그곳에서 한정된 의미만을 찾는다. 그는 결국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택한다. 이명준에게 진정한 삶의 광장은 남도 북도 아니었다. 포로송환위원회 앞에 서서 제3세계를 택한 그는 비극적 종말을 암시한다. 인도로 가는 배를 타고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결국 배에서 떨어져 죽는다. 남과 북이 그의 삶의 광장이 돼 주지 못한 배신감을 안고 깊은 물에 들어갔으리다.

 지금 광장의 소리를 의식한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광장에서 뭉쳐진 소리를 따라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기를 바란다. 탄핵이 됐다고 우리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최순실 사태 이후 정치권들은 광장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면서 각 당마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여야가 여러 번 말을 바꾸면서 결국 탄핵 표결의 날을 맞았다. 실제 광장에서 나온 목소리는 그대로였는데 여야는 그 목소리를 자기들 쪽으로 해석했다. 두루뭉술, 최순실 사태는 국회의 표결로 중간 결과를 보게 됐다. 아직 특검이 남았으니 광장 목소리는 잦아들 순 있어도 사라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경우에 따라선 광장에서 촛불이 더 거세게 붙을 수도 있다.

 광장의 촛불이 아무리 거세도 헌법을 넘을 순 없다. 정치권 모두가 광장 소리에 따라 일부 친박계를 빼고 한 줄로 서듯이 움직였다. 탄핵이 오기까지 그들이 보인 결연한 태도는 애처롭기까지 했다. 촛불이 작게 불탈 땐 정치력을 보이는 듯하다가, 촛불이 활활 타오를 땐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일단 살고 보자는 심사를 드러냈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탄핵되면 즉각 사임해야 한다고 했다. 사태 초기에는 거국내각을 주장하다 그 후 퇴진으로 바뀌고 또다시 탄핵으로 차를 몰았다. 이제는 탄핵이 가결되면 퇴진하라고 한다. 광장의 촛불에 권력욕을 비추니 이리저리 안 흔들릴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가 광장으로 사람을 몰아갔다. 광장이 모든 국민의 허탈감과 분노를 품어주고 묵은 정치를 몰아낼 힘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주말마다 나와 거친 숨소리를 뿜어냈다. 서울의 큰 광장에서 다시 지방의 작은 광장으로 그 힘이 이어졌다. 지방 광장에서도 촛불이 붙어 거대한 힘의 고리가 됐다. 이런 속에서 여야가 손익 계산에 분주하면서 광장의 곁불을 쬐며 누가 더 따뜻한 방을 차지할까 골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촛불을 바라보며 야권 대선후보들의 말이 더 뜨거워졌다. 문 전 대표는 나와 적을 구분하는 진영 논리를 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내뱉은 거친 말은 옮기기에도 낯부끄럽다. 이 모두가 촛불 정국에서 덕을 보려는 얄팍한 수 싸움이다.

 광장에 촛불이 오르면서 보수와 진보층이 흔들리고 여당이 보수당으로 존재가치를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야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고 볼 수도 없다. 촛불은 공평하게도 여야를 불문하고 질타하고 있다. 이게 광장의 힘이다. 그 너른 광장을 업고 자신의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어리석다. 여야의 셈법이 달라 탄핵의 가결ㆍ부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지만 광장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많은 대선주자들이 핏대를 세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도 촛불에 따라 흘러가는 소리일 뿐이다. 광장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정치인은 드물다. 제 논에 물 대기 바쁜 사람이 남의 논 형편을 볼 새가 없다.

 지금까지 광장의 목소리는 내부로만 향했다. 알고 보면 집안싸움이다. 우리의 집안싸움은 늘 끝 모른 데까지 간다. 실제 바깥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지금 전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광장에 갇혀 웅크리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다른 나라는 뛰어가는데 우리는 뒷걸음질 치는 형국이다. 광장에는 내일을 향하는 메이리는 없다. 오직 지금 그리고 나만 살고자 하는 시선뿐이다.

 이번에 펼쳐진 광장에서 무얼 찾아야 하는지 무거운 머리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직 누가 살고 누가 죽고 하는 판이 돌고만 있다. 아무리 광장이 무섭게 돌아가도 세상과 담을 쌓으면 우리 모두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이번 광장은 민주주의의 꽃을 더 피우기 위한 장도 아니고 대통령의 실정을 꼬투리 삼아 누가, 어느 당이 권력을 이어받는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우리는 이번 광장에서도 큰 변화를 보기 힘들 수 있다. 정치인들이 광장의 의미를 제대로 규정하는 노련함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국회에서 탄핵 가부가 결정된다. 광장의 목소리가 국회로 옮겨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광장은 휑하니 열리지 않고 여전히 칙칙한 그림자를 드리울 개연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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