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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정치판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정치판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11.24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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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요즘 정치판이 개판이다. 점잖게 말하면 소설과 같아서 매일 흥미진진하다. 매일 벌어지는 사건에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주말마다 펼쳐지는 거대한 촛불집회는 바로 2016년 가장 중요한 역사의 현장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그림으로 이미 예약됐다. 지금 모든 국민은 현대사의 중심에서 한숨을 쉬고, 몰랐던 사실을 알고 탄식한다. 국민들이 호흡을 하면서도 공기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정치는 공기 같아서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 제대로 굴러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정치를 잊으면 곧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모든 정치 사항이 코밑에 와 있다. 소설은 재미있지만 소설 같은 삶은 피곤할 뿐이다.

 김해 사는 50대 한 분이 요즘 정치판을 보면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일이 당최 손에 잡히지 않고 정치가 되어가는 꼴을 보면서 분개하기도 하고 허탈해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분은 지난주 토요일 서울 가는 기차를 다짜고짜 탔다. 구멍 뚫린 가슴을 안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다음날 새벽녘에 잘 곳이 마땅찮아 공원 벤치에 몸을 눕혔다. 자신이 꼭 촛불이 밝히는 그 현장에 있어야만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분은 이틀을 소설 같은 시간을 보냈다.

 소설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을 꼭 일어난 것처럼 이야기로 꾸밀 때 재미있다. 독자가 현실에서는 이런 인물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쫓아 고개를 주억거리며 끝까지 읽는다. 최순실 게이트는 방송으로 들으면 e북이고 종이책으로 읽으면 소설책이다. ‘청와대에서 이런 일까지…’, ‘최순실의 손이 여기까지 미쳤다니…’라고 속앓이를 하면서 듣고 읽다 보면 큰 여운을 남긴다. 바로 허탈감이다. 보통 소설이 감동을 남기고 끝을 맺지만 최순실 소설은 허망함을 안겨준다. 여하튼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전개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하루도 사건 발전을 보지 못하면 궁금하다. 괜히 더 알면 괴로운데도 마약 같아서 더 깊은 맛을 봐야 한다.

 여러 소설 종류 가운데서도 역사소설이 가장 재미있다. 물론 개인적이 취향에 따른 건 인정한다. 역사소설은 일단 스케일이 크고 사실을 바탕에 깔기 때문에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아서 좋다.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정치 사건을 택하면 프랑스 혁명이 둘째가라면 서럽다. ‘소설 프랑스혁명’은 서양 역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사토 겐이치가 써서 역사의 이면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정치는 항상 두 세력이 부딪치게 돼 있다. 진보와 보수, 이상과 현실 아니면 좌파와 우파가 머리를 맞대 싸우면서 어떤 때는 피를 부르기까지 한다. 루이 16세가 1789년 과세 승인을 위해 소집된 삼부회를 무력으로 탄압해 프랑스 혁명을 유발한다. 성난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부숴 폭동이 일어나면서 프랑스 혁명이 들불처럼 열기를 더한다. 그 후 자신의 측근이 죽자 고립된 루이 16세는 의회에 무시당하고 파리 시민들에게 굴욕을 당한다. 루이 16세는 처형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소설 프랑스혁명’을 읽으면 너무 흥미진진하다. 프랑스 혁명을 대략 알고 읽는 독자는 그 이면을 들춰 보면 볼수록 재미에 빠진다. 루이 16세의 비참한 최후는 소설의 재미로 보면 최고조에 속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그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운다. 하지만 역사를 읽으면서 교훈을 배우기가 만만찮다. 사람들 대부분은 역사의 행간을 읽는 능력이 부족하다. 역사를 재미 이상으로 보는 탁견이 있어야 어리석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역사를 꿰뚫어 보면 미래를 보는 혜안이 생긴다.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 빠진 지금, 앞으로를 예견해 더 큰 불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이 또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다.

 정치인은 현재 정치판을 보면서 가슴앓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빨리 풀어줘야 한다.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싶은 무수한 사람들의 응어리를 빼야 한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자기 쪽으로 틀어 역류시키려는 부류나 지류를 만들어 자기 이름을 내려는 사람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정치판에 등장하는 온갖 소설적인 재미에 씁쓸한 마음이 더해진다. ‘비아그라 구매’, ‘7시간 비밀’, ‘청와대 식수 공급 중단’ 등 갈수록 재미있다. 그 재미가 더하기 전에 촛불이 빨리 꺼졌으면 좋겠다. 반전의 시대를 맞기를 바라는 사람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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