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3:06 (금)
한국 정치와 신독
한국 정치와 신독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6.11.06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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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대학과 중용에 신독(愼獨)이란 말이 나온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삼가다는 의미다. 대학은 마음의 뜻을 진실하게 한다는 것(誠意)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 더욱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중용도 ‘道란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떠나 있다고 한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누구도 듣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아무도 안보는 데에서 보다 자신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은미한 데에서 보다 자신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퇴계 이황선생도 평소 (경)을 중시하면서 (신독)으로 자신을 수행했다. 선생은 마음을 다스리는 처방으로 사무사(思無邪ㆍ사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라), 신독(愼篤ㆍ매사에 조심하고 독실하게 행동하라) 등 무려 30가지의 활인삼방(活人心方)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닦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자유와 평등, 정의와 분배 등의 거대가치를 주창하는 지식인들에게서도 사회를 어지럽히는 행동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의 오랜 관습, 주변의 영향, 자신의 습관, 심리적 상태는 물론 자신의 욕심에 따라 심지어 대의명분이란 이름으로 함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취약한 존재다.

 지금 우리나라를 미증유의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의 외로움이 빚어낸 참사라는 것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담화에서 최순실을 “가장 힘들었던 시절 곁을 지켜 줬던 사람”이라면서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다. 개인적 인연을 믿고…”라고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가 감옥이더라. 다 퇴근하면 그런 적막강산이 없다”고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한 달 만에 “쓸쓸하다”고 했다. 반면에 박근혜 대통령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해 가족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다”고 했다. 가뜩이나 힘든 감옥생활을 스스로 더 깊은 감옥속에 가뒀던 것으로 보인다. 그 어둠속에서 최순실을 한줄기 빛으로 봤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충정은 남달랐을지 모르나 그 충정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 지는 간과했다.

 충무공 이순신의 신독은 이랬다. 장군은 정부 인사를 담당하던 이이가 유성룡을 통해 만나자는 제안이 오자 이렇게 말했다. “나와 율곡이 같은 성씨이니 의리상 마땅히 가깝게 지내야 하나 그가 관리의 인사를 맡고 있는 동안에는 만날 수 없다.” 장군은 또 한 관리가 약재와 쇠고기 등을 보내오자 부하 군인들에게 모두 나눠 줬다. 백의종군 때는 머물려던 집 주인이 과부라는 말을 듣자 다른 집으로 옮겼다. 박 대통령과 충무공은 이렇게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만 신독을 몰랐을까. 위기의 대한민국을 앞장서 돌파해야 할 정치인들을 보면 신독과 거리가 멀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야당은 문제를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혈안이다. 대선주자라는 이들은 선명성 경쟁을 벌이느라 나라꼴은 생각지도 않는다. 이 난리 속에서 예산을 챙기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친박 좌장이라는 인물을 위시해 소위 친박이라는 인사들은 입을 다문채 눈치만 보고 있다. 모두가 정치적 주판알을 튕기는데만 혈안이다.

 퇴계의 활인방 중에는 이런 게 있다. 막기심(莫欺心), 순천도(順天道), 과욕(寡慾), 유순(柔順), 계노(戒怒), 계포(戒暴), 처중(處中). 스스로 속이지 아니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며, 욕심을 부리지 말고, 부드럽고 공손 하며, 함부로 성내지 아니하고, 포악한 언동을 삼가하고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신중히 처신한다는 말이다. 대선주자라는 이들이 특히 새겨들을 말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정치인들을 언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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