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9:47 (금)
김해서 옛 문화 담긴 길 걷고 싶다
김해서 옛 문화 담긴 길 걷고 싶다
  • 김혜란
  • 승인 2016.11.02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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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포털 사이트에 들어오자마자 얼른 눈에 띄는 문장을 클릭을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걷고 싶은 길을 소개하고 있다. 산티아고, 세렝게티, 토스카나, 곰파, 훈자, 라다크, 솔로미테…. 이름만 알지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매일같이 꿈을 꾼다. ‘언젠가는 가고 말거야.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생각보다 경비가 만만치 않다. 적금을 넣어서 준비해야 할까?’ 그런 세월만 십 년도 넘게 흘려보낸 것 같다.

 하루하루 눈 뜨기가 무섭다. 계속되는 초유의 정치게이트 속보에 이제는 놀라기도 지친다. 속보가 아직 소화도 안된 몇 시간 전의 속보를 덮어버린다. 벌써 사나흘 전의 뉴스는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 것 같다. 피로하다 못해 제발 더 이상 속보 따위 안나왔으면 싶기도 하다.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자꾸자꾸 가장 중요한 사실을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분노로 잠을 잘 수 없는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은 누구인지의 문제이다. 적어도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은 두 번째 순위로 밀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생각을 좀 해야 했다. 걷고 싶은데 김해 장유로 이사 온 지 10년도 넘었건만,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 외에는 제대로 걸어본 곳이 없다. 그저 밥해 먹고 잠자는 동네가 이곳일 뿐,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노라고 변명해본다. 어디를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걸을만한 곳을 걸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들이 자리 잡았나 보다. 그냥 아무 데나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되는 일인데, 왜 이러나 싶다가 특강 하나를 들었다. 절박하면 통하는 것인지, 두류문화연구원에서 마련된 ‘김해의 옛길 이야기’였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자신의 저서인 ‘문화인류학’에서 ‘태초에 발이 있었다’고 했다. 최초의 원인(原人)이 직립하고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래 200만 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려서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걷기가 인간의 몸과 정신에 좋은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실천의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모두 인정한다. 그런데 어디를 걷느냐는 문제를 생각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대부분 도로는 차를 위한 길이고, 인간이 걸을 수 있는 길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득, 걷고 싶은 곳을 걸으려면 다시 길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모든 길은 ‘통길’ 에서 비롯됐는데, ‘통길’이란 사람이나 동물이 거듭해서 지나다녀서 자연스럽게 열린 길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길은 전북 진안의 여의곡 유적지에 있다고 한다. 채석장에서 떼어낸 상석을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견인해 간 자국이 발굴조사에서 드러났는데, 상석을 끌고 간 뒤 남은 자취로서 영어의 Trail에 해당되는 것으로 구조를 갖춘 길이다. 강사의 말에 의하면 삼국시대 길에 관해 비교적 많은 자료를 남기 곳은 신라인데 김해의 옛땅인 가락국은 항상 뒷전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밝혀진바, 대외 교역의 직접적인 증거물인 로만 글라스가 대성동 91호분에서 출토되는 등 문명의 길인 실크로드가 김해, 그러니까 가락국에까지 닿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반도의 남쪽에서 실크로드를 이야기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김해, 가락국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잇는 문명교류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유물과 기록으로서 드러난 것이다.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와 정박한 곳이 망산도! 이 망산도가 어디인지가 관건인데, 대체로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망산도와 유주암 일원으로 말하지만, 김해 식만동의 전산(前山)을 말하는 학자도 있다. 가락국기에 기록된 당시 김해지역은 평야가 아니라 얕은 바다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후기까지 바다였으니 허황옥이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에 배를 대고 먼 길을 돌아서 가락국까지 왔을 거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둬 본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계획은 좀 뒤로 미루기로 한다. 대신 김해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치가 그렇지 않은가. 자신 것 미뤄두고 남의 것 먼저 알려고만 해온 우리, 결국은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의 것을 찾게 될 것이다. 흉흉한 이 시절에, 나 자신부터, 내가 서 있는 길부터 걸어 보자. 역사를 알려는 것은 미래를 제대로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해 옛길도 걸어보고 싶다. 쉽지 않을 것이다. 어디 옛길이 얌전히 사람 가기 좋은 길로 돼 있겠는가. 그래도 먼저 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으니 물어서 알아보고 가면 될 것 같다. 중국의 차마고도, 로마의 길, 일본 에도 시대 길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도 보존돼 있다. 대한민국 가락국의 옛길은 그게 왜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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