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9:07 (토)
‘동물농장’에 사는 불쌍한 동물들
‘동물농장’에 사는 불쌍한 동물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10.27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류한열 편집부국장
 식탁 위에 돼지고기가 오르기까지 돼지는 처참한 사육을 당한다. 어느 돼지는 나름대로 제한된 자유를 누리다 우리에서 ‘고귀한 희생’을 하지만 많은 돼지는 말 그대로 철창에 갇혀 살만 찌우며 죽는 날을 기다린다. 일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효율적인 축산기법일 수 있지만, 돼지들의 입장에서 보면 끔찍해도 너무 끔찍하다. 사람의 잔혹성은 상상을 초월하고 이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는 잔머리도 거기에 비례해 발달한다. 그렇지 않으면 돼지고기 한 점이라도 기분 좋게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폭압에 반기를 쳐들고 평등한 세상을 꿈꾼 멋진 돼지가 있다. 이름은 스노볼과 나폴레옹. 이들은 1945년생이다. 그해 조지 오웰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소설 ‘동물농장(Animal Farm)’ 얘기다. 이들은 혁명에 성공한 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고 외친다. 혁명 초기에 부르짖었던 “두 다리 짐승은 적이고, 네 다리 짐승은 아군이다”는 구호는 날아가 버린다. 이 돼지들은 나중에 농장주와 거래를 터면서 함께 파티를 열어 인간과 두 다리로 서서 건배를 나눈다. 겉으로는 인간과 돼지를 구분하지 못 한다. 이런 돼지 같은 놈들이 다른 동물들의 희망을 등에 업고 존스의 ‘매이너 농장’을 뒤엎고 폭력을 휘두르며 결국 자신들만을 위한 세상을 만든다.

 인간의 욕망은 이 세계를 굴리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이 욕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고 그 무자비성은 낯부끄러운 줄 모른다. 욕망의 칼을 칼집에 넣어두기는 어렵다. 무엇이든지 거기에 대고 칼을 휘둘러 피를 흘려야 만족을 한다. 돼지들은 무리를 지어 살고, 땅에 코를 박고 먹을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는 본능이 있다. 암컷 돼지는 출산이 다가오면 구멍을 파고 볏짚 등을 깔고 새끼를 낳는다. 새끼를 낳은 후 며칠이 지나면 몸을 툴툴 털고 자신의 무리로 되돌아간다. 이런 본능을 가진 암퇘지를 새끼를 낳는 수년 동안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일이 편하고 새끼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이 돼지들의 스트레스는 죽는 그날까지 이어진다. 이들이 조지 오웰의 도움을 받았다면 폭동이 일어나도 수천 번 일어났을 것이다.

 이런 현실 문제를 안은 돼지를 놔두고 조지 오웰은 이상을 꿈꾸는 돼지와 친했다. 이상 실현을 위해 혁명을 한 결과 독재자가 나타나는 역설을 보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이상 실현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혁명 과정에서 신조로 삼던 계명이 바뀌고 이상 실현을 위해 혁명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독재자가 나타나는 역설이 나타난다. 인간은 권력의지를 가지고 태어나 지배하기를 좋아한다. 인간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고 무자비하면서 만족을 모른다. 이게 동물농장에서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온 가르침이다.

 오래전 영국에서 만들어진 동물농장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농장의 모든 동물이 존경하는 정신적 지도자인 ‘메이저’는 최태민이고, 동물농장의 독재자인 ‘나폴레옹’은 최순실이다. 그 외 등장인물을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 여하튼 현대판 동물농장은 민주 국가에서도 숨은 권력이 한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짓거리를 할 수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선 동물들이 처음엔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혹사를 당하면서 개인숭배를 강요받는다. 공포와 세뇌를 당해 이성이 마비되면 공포의 대상을 존경하고 숭배까지 하게 돼 있다. 동물들은 알면서도 서서히 지도자의 절대권력에 굴복하지만, 현대판 동물농장에선 아무도 모르고 다 당하는 꼴이다. 자신들 앞에서 읽은 ‘국가의 7계명’(‘동물농장’에 동물주의 원칙을 요약해 공포한 7계명이 있다.)이 자신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손을 거쳐 나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런 계명이 고쳐지고 수정돼 그들 앞에 버젓이 나타났다. 통탄할 일이다. 옛날 동물농장에선 알고 당했는데 지금 동물농장에선 모르고 당한다. 모든 민중이 일어나 궐기해도 그 배신감의 분노를 떨치지 못할 수도 있다.

 누가 민중에게 참혹한 고난을 주는가. 돼지를 철재 우리에 가둬 아무 생각하지 못하도록 해놓고 자신의 배만 두드리는 농장주는 악하다. 동물들에게 헛꿈을 심어주고 공포를 심어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는 동물농장 지도자는 못된 놈이다. 지금 동물농장에서 모든 사람을 속여 허탈한 구렁텅이로 빠트리고, 배신감에 치를 떨게 한 지도자는 나쁜 사람이다.

 동물농장을 읽으면 권력을 가진 돼지와 개에게 분노가 일어난다. 나이든 동물들은 때때로 흐릿한 기억을 떠올려 반란 초기의 농장 상황이 지금보다 더 좋은지 아닌지 기억하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권력자에게 속지 않으려면 또렷한 기억을 유지해야 한다. 지금 동물농장의 불쌍한 동물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다시 혁명을 해야 할지…. 조지 오웰은 혁명이 부패하면 또 다른 독재자가 나온다고 경계했으니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