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1:33 (토)
학교 급식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학교 급식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 김금옥
  • 승인 2016.10.26 20: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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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김해삼계중학교 교장
 아침에 일어나면 주부들은 주방으로 향한다. 일터나 학교로 가는 가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아침식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필자는 학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급식소부터 살핀다. 급식소 옆에는 식재료 배달 차량들이 줄을 서고, 조리실 안은 양파와 다시마 멸치 새우를 넣어 육수를 우려내느라 바쁘다. 매월 첫날에는 팥밥과 미역국 그리고 떡을 준비해서 행여 생일 밥을 먹지 못한 아이들을 살피고, 시험기간에는 입맛을 잃은 아이들을 위해 특별식을 준비한다. 학교 화단에서 딴 매실로 만든 엑기스를 조미료로 사용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아이들을 조사해 죽도 함께 끓인다. 어제 저녁에는 디저트로 내어놓을 수제 요거트를 만드느라 늦은 시간까지 조리실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본교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그렇듯이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균형 잡힌 영양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전문가 집단이 작성한 표준식단을 사용한다. 쌀을 포함해 식재료들은 가능한 김해지역에서 재배된 제철의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음식의 량은 학생 수를 계산해 항상 넉넉하게 준비하는 편이다. 하지만 입맛에 썩 맞는 음식이 나오는 날에는 줄을 두세 번씩 서는 아이들이 있어 음식 부족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급식소 조리원들의 일은 참으로 고단해 보일 때가 많다. 당일 아침 배달된 식재료로 한정된 시간 안에 1천여 명이 식구들을 위한 음식을 장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치를 담그거나 뼈를 고거나 수제 식혜를 만들 때는 초과근무까지 감수한다. 지난여름에는 이상고온으로 식중독이 우려돼 김치를 볶고 포도를 삶고 자두와 상추까지 데치는 고단한 작업을 10월이 올 때까지 계속했다. 그냥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8월의 주방은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게다가 조리실은 음식을 끓이고 데치는 곳이어서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고 칼질로 손가락을 베거나 손목 힘줄이 늘어나기도 하고 무거운 것을 들다가 허리에 부상을 입기도 한다. 잘못 배달된 식재료를 교환하고 반품까지 가면서 간신히 식사준비를 마친 날, 식탁 앞에 앉은 영양사의 얼굴은 하얗게 탈진해 숟가락을 들 힘조차 없어 보였다.

 식단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은 식단표를 시간표와 나란히 붙여두고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음식이 맛있을 땐 필자를 향해 엄지를 세우고 “우리학교 짱!”이라며 애교를 부린다. 물론 학교 급식에 매일 고기를 올려 달라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인스턴트 음식을 올려달라고 요청하는 학부모도 있다. 배식된 양이 적었다고 항의전화가 오기도 한다. 급식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어서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언론 등에서 학교 급식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식의 표현을 듣게 될 때이다.

 물론 학교 급식과 관련된 위장업체나 동시 투찰 문제는 시스템에서 철저히 걸러져야 할 것이다. 학교 내부에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급식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표현을 우리 사회가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아이들이 비리에 얼룩진 밥을 먹는다는 느낌이 앞설까 우려가 된다. 한 끼의 밥에는 농부의 땀과 조리원들의 노고도 그렇거니와 식자재 공급업소 방문과 검수부터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 해주는 학부모님들의 아낌없는 수고가 숨어있다. 학교급식은 밥 한 그릇을 먹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 공기의 밥을 먹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필요했는지를 알고, 그에 대해 먼저 감사할 수 있는 품성을 기르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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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숙 2016-10-28 09:02:54
현장의 영양사로서 선생님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누가 뭐라고 곡해를 해도 우리 영양사들이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충실한 유일한 이유는 사랑하는 우리들의 아이들을 위함때문입니다.
처절하리만큼 참담했던 올 한해의 어려움이 선생님의 글로 큰 위로가 되네요.
앞으로도 소신껏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

kes7209 2016-10-28 08:53:44
일부 학교급식 비리 기사로 인해 자괴감에 빠져 있는,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대부분의 급식종사자들에게 힘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정말 멋진 교육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