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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날을 견디는 법
참혹한 날을 견디는 법
  • 김혜란
  • 승인 2016.10.26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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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참혹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밤에 잠을 잘 수 없다. 대한민국과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과도 인사보다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다. 실시간 SNS를 훑어보면서 확인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어둔 일들 생각에 치이다가 음악파일을 찾아본다. 보로딘의 ‘현악사중주 제2번 라장조 세 번째 악장 녹턴’을 듣는다. 알렉산드르 보로딘은 러시아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하는 교수였는데, 연구 틈틈이 작곡을 했고 러시아 국민음악 창시자가 됐단다. 19세기 사람이고 그때 만들어진 곡이다. 녹턴부분은 ‘야상곡’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밤 분위기를 내고 바이올린과 첼로의 어울림이 멋지다. 잠 못 이루는 밤 제격인 곡이다.

 혹시 글 쓰는 사람이 클래식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인가 생각한다면 결코 아님을 밝혀둔다. 그저 음악을 들으면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받을까 찾아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곡은 얼마 전 한 연주회장에서 다시 찾은 곡이다.

 창원대학교 음악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 연주자들이 창단연주회를 열었다. 현악사중주 ‘일오’다. 바이올린 주자 2명과 비올라 1명, 첼로 1명이다. 여러 번 책 읽는 프로그램에 함께 했던 친구들이라 감사도 하고 치하도 할 겸 연주회를 찾았다. 거기서 재발견한 곡이 바로 보로딘의 ‘야상곡’이었다. 리플렛도 챙기지 않고 들어서는 바람에 휴식시간에야 보로딘 곡임을 알고는 집에 오자마자 찾아 뒀다.

 연주시간 한 시간 남짓 동안 궁금한 것이 생겼다. 재학생인데, 이렇게 서로 모여서 협연도 하고 이름까지 붙여서 창단 연주회까지 하는 경우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함께 모여서 앙상블을 이루고 일종의 연주 스터디나 협연을 하는 경우는 꽤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창단 연주회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중론이다. 자기들끼리 함께 연주하는 일까지는 쉽게 가능하지만, 대중들 앞에서 자신들의 연주를 보란 듯이 내놓기에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연주뿐만 아니라 연주회를 위한 준비과정 또한 신경 쓰이는 일일 것이다. 거기다가 그런 활동을 하지 않는 선배들이나 같은 동기들의 눈총 아닌 눈총(?)도 견뎌야 한다.

 음악은 다른 예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건축물이나 조각 혹은 그림처럼 눈에 드러나는 결과물이 아니다. 악기를 통해 음이 울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 세상의 만져지거나 보여지는 것들과는 안녕을 고한다. 지금은 녹음도 가능하지만 이전 시대에는 현장에서 악기의 진동으로 음이 나오는 순간, 이내 공간과 작별하고 곧이어서 그 소리마저 사라진다. 물론 파동으로 존재하지만 그 파동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니까. 암튼 그래서 더욱 음악은 내면의 감정과 관련이 깊다. 형식이나 내용은 물론 효과까지도 인간이 주관적으로 판단한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연습해도 듣는 사람이 별로라고 여기면 별로일 수 있다. 강한 자존감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조금은 딴 이야기가 될까. 통합창원시가 만들어지면서 마산 시립 교향악단과 창원 시립 교향악단이 합쳐졌다. 그 결과 거의 10년째 새로운 단원을 모집하지 않고 있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지역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꿈일 수 있는 시립 교향악단 단원 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레슨이나 음악학원 운영, 성인대상 평생교육 강사, 방과후 교사 등에도 종사하지만 연주자들로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현실일 것이다. 개인 연주활동을 포기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악사중주 ‘일오’는 1년 전부터 창단 연주회 준비를 해왔다. 마을 전시회장의 작은 연주부터 도서관에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혹은 종교인들의 기도를 위해, 달빛 내리는 밤중 옥상에서도, 연주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기꺼이 함께했다. 캠퍼스를 떠나서도 연주활동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다짐이 깔려 있었다. 아마도 본인들은 크게 느끼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현장에서 들었던 사람들은 생각했다. ‘야, 이렇게 가까이서 클래식 연주를 듣고, 연주자들 호흡소리, 손동작, 표정도 보고 들으면서 함께 할 수 있구나. 연주회장은 너무 거리가 멀게 보였는데…’

 모든 세상일이 그렇겠지만 정체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연주자임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눈치 볼 것 없다. 재학시절부터 세상을 향해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고민하고 연주한다면 새로운 기회는 열릴 것이다. 이미 열렸다. 아마 ‘일오’의 창단연주회를 본 선배나 동료들은 자극받았으리라. ‘일오’나 그들이나 다 같은 연주자이고 예술인이므로.

 참혹한 슬픔을 견뎌내야 하는 한 시민 역시, 이들 창단 연주회에서 들은 보로딘을 다시 찾아 듣고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보로딘의 음악으로 위안을 삼게 해준 현악사중주 ‘일오’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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