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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장관 깨우지 마라”
“밤에는 장관 깨우지 마라”
  • 김국권
  • 승인 2016.10.11 2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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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권 전 경남도의원
 지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당시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일본 내각 관방장관은 109시간 넘게 잠을 안 자고 일했다.

 보다 못한 일본인들이 “잠 좀 자라”고 하기에 이르렀고, 누군가 ‘edano_nero(에다노 자라)’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뒤부터 ‘edano_netekure(에다노 잠 좀 자요)’, ‘edano_daijobu?(에다노 괜찮아?)’ ‘edano_shinuna(에다노 죽지 마)’ 등의 응원이 잇달았다. 사고 나흘 만인 3월 15일 그가 일단 집에 간다고 하자 ‘edano_oyasumi(에다노 잘자)’ ‘edano_my_angel(에다노 나의 천사)’, ‘we_are_the_edano(우리는 에다노)’처럼 애정을 담은 표현이 등장했다. 당시 차분한 상황 브리핑으로 혼란을 최소화한 에다노는 일본인들의 심리적 공황을 덜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이름에 빗댄 ‘에다루’(えだるㆍ에다노의 이름 ‘えだの’와 ‘∼한다’는 ‘する’의 합성어ㆍ‘수면부족 상태로 극한상황까지 일하다’라는 뜻)라는 동사까지 생겼다.

 그렇게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에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당시 에다노 장관은 109 시간 넘게 잠을 자지 못했던 것으로도 알려졌고, 이런 그의 모습은 당시 불안에 휩싸였던 일본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의 대상이 되고, 특히 트위터 등에서는 ‘에다노 제발 잠을 자라’라는 해쉬태그(#)가 유행했다. 수면 부족으로 지친 상태에도 매일 지진 현황을 브리핑하는 그의 모습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였고, 에다노 장관의 사진을 합성해 그가 수면을 취하고 있는 사진이 화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실제 에다노 장관이 지진 발생 후 4일이 지난 뒤 잠을 자러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드디어 에다노가 잠을 자러 갔다”라는 해쉬태그(#)가 SNS에서 수천 번 이상 공유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에다노 장관은 지진 피해 복구 현장에 발 벗고 나서며 일본의 차세대 지도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기존의 단정한 엘리트라는 트레이드마크 대신, 100시간 넘게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한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때에 그의 이름을 들었고, 검색을 해보니 나랑 같은 동년배이기도 하고, 28살에 정치에 입문해 지난 2010년에 관방장관에 임명되고 일본 내각에서도 보수파에 속해 한국과 관련된 수많은 망언을 쏟아내기에 그다지 호감은 아니었지만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그의 행보가 자국민을 위해서는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다시 우리나라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이름이 나온 계기가 “밤에는 장관 깨우지 말라”는 황당한 지진 대응 매뉴얼 때문이라니 참으로 할 말이 없다.

 긴급재난상황이 발생하면 국민이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은 국가이며 정부다. 109시간이 넘게 잠을 자지 않은 주무 장관이 있는 나라와 한밤중에는 장관을 깨우지 말라는 매뉴얼을 가진 나라. 무엇이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나라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상 초유의 지진에 불안감을 가졌던 것은 우리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이며,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지진이라는 거대한 재해에 대응하는 정부의 체계적이고도, 신뢰감 있는 대응이 아닐까하는데, 긴급재난상황에 국민이 믿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니 결국은 각자도생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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