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2:55 (금)
‘각자내기’ 습관화해야
‘각자내기’ 습관화해야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10.06 2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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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객원위원
 매주 한 번씩 집 가까이 커피숍에서 만나는 일본인 친구는 도착하는 대로 카운터에서 자기가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고 계산까지 한다. 가끔 내가 먼저 도착해서 뭐 마실 거냐고 물으면 “괜찮아요, 내건 내가 살게요”라고 한다. 일본은 음식이나 술을 먹고 난 후 각자 자기가 먹은 만큼 계산하는 이른바 더치페이(각자내기)가 정착돼 있다. 하다못해 차 한 잔을 같이 하는 경우에도 그렇다고 한다.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들이 회식하는 자리에서도 윗사람이 계산하거나 먼저 먹자고 한 사람이 돈을 내는 우리 문화와는 완전 다르다. 직급과 신분에 상관없이 각자내기가 기본이다. 일본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기 것을 자기가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같다.

 미국에서도 더치페이는 보편화돼 있다. 직장 동료들끼리 어울려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셔도 계산은 따로 한다. 하지만 정작 미국인들은 ‘dutch pay’란 말을 쓰지 않고 ‘go dutch’란 표현을 쓴다.

 ‘더치 페이’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대접 문화인 ‘더치 트리트(Dutch treat)’에서 온 말이다. ‘더치(Dutch)’는 ‘네덜란드의’ 또는 ‘네덜란드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네덜란드와 식민지 경쟁을 벌이던 영국 사람들이 부정적 의미로 ‘더치’란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영국인이 ‘트리트’ 대신 ‘페이(pay)’로 바꿔 부르면서 ‘더치페이’가 각자 부담을 뜻하는 말로 널리 퍼졌다고 한다. ‘더치 트리트’는 ‘더치페이’와 함께 지금도 쓰이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외래어인 ‘더치페이’를 대신할 우리말로 ‘각자내기’를 선정한 바 있다. 누리꾼이 제안한 ‘나눠 내기’, ‘각자내기’, ‘각자부담’, ‘추렴’, ‘노느매기’를 후보로 투표한 결과 ‘각자내기’가 52%(1천776명 가운데 940명)의 지지를 얻어 ‘더치페이’를 갈음할 우리말로 결정됐다.

 우리나라의 문화 가운데 소위 접대문화는 일상이고 관습이라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문화가 생긴 것은 과거 삶이 궁핍할 때 배고픔을 달래주는 것이 큰 미덕이었기 때문에 음식을 대접하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끈끈한 관계 유지 등을 위해 과도하게 주고받고, 접대하는 것이 사회문제로 지탄을 받고 있다. 유별난 학연, 지연, 혈연 등 관계문화가 빚은 부정청탁도 심각하다.

 이런 관계문화는 사업자가 경쟁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시장에 참여한 사업자 상호간 자유로운 경쟁을 침해한다. 또 가격, 품질, 서비스를 경쟁수단으로 하는 능률경쟁을 방해하고, 거래 상대방의 우월적 인맥과 학연, 청탁과 같은 관계로 인해 공정하고도 자유로운 경쟁인 공정경쟁을 어렵게 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법인 기업 접대비는 45조억 원을 넘었다. 지난 2011년 8조 3천억 원에서 2014년 9조 3천억 원, 지난해에는 9조 9천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였다. 접대비 중 유흥업소에서 사용된 금액은 연간 1조 원을 넘었다. 이런 기업들의 접대 문화 행태는 시사하는 바 크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100점 만점에 56점, 168개국 중 37위 하위권으로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에 낯부끄러울 정도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부패 지수는 항상 낙제점에 머물러 있다.

 과거 미풍양속이었던 정(情)이란 이름의 푸짐한 선물 관행, 학맥과 인맥을 통한 청탁 등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이젠 청탁하지도 받지도 말고, 공짜로 음식이나 술을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애매하게 의심스러우면 더치페이(각자 내기)해야 한다. 내가 선물을 받고 접대를 받는 것이 직무관련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직무관련성이 있는 경우엔 단 1원이라도 식사 대접을 하거나 선물을 제공한 경우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각자 자기가 먹은 것을 자기가 계산하는 습관을 들이면 김영란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김영란법이 기대하는 선진사회는 공짜문화, 연줄문화, 접대문화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평등한 사회다. 각자의 몫은 각자가 지불하는 사회, 맑고 밝은 투명한 세상의 다른 이름이다. 각자내기가 정착되면 공짜와 같은 접대문화가 없는 건전하고 당당한 의사소통이 이뤄질 것이다. 우선 기업들은 불필요한 시간 낭비와 접대비 지출이 줄어들 것이고 그에 따른 비용부담과 인력의 재활용으로 투자와 연구개발 등에 사용할 여력이 커질 것이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공직사회에도 새바람이 불고 있다. 공직자들이 관행적인 접대나 청탁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면 소신 있는 행정서비스도 기대할 수 있다.

 부정부패 없는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합의 속에 시행되고 있는 김영란법이 잘만 지켜진다면 우리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고 투명해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도 점차 더치페이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더치페이 계산을 도와주는 앱들도 많이 개발되고 있다. 한 사람이 일단 돈을 내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몫을 간편 송금 모바일 앱을 통해 계산한 사람에게 보내주는 방식으로 더치페이를 하기도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친숙해지는 것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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