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7:37 (목)
‘김영란 바람’ 불 땐 의리를 버려라
‘김영란 바람’ 불 땐 의리를 버려라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09.29 2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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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한때 주먹을 불끈 쥐고 의리를 외쳐 밥벌이를 잘한 남자 배우가 있었다. 김보성 씨는 현재도 의리를 내세워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의리가 인간관계에 중요한 덕목이라는 증거다. 의리가 없으면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밥을 몇 차례 얻어먹고 한 번쯤 사는 게 기본이고 시도 때도 없이 밥을 얻어먹고 얼굴에 철판을 깔면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된다. 달리 말하면 의리가 쥐꼬리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친구끼리 혹은 이웃끼리 상대의 잘못을 보고 법에 호소하면 그 사람은 진짜 의리부동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보면 밥맛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공익보다는 가까이 있는 사람의 사익을 우선하는 게 우리의 정서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세상이 확 바뀐다는 기대와 우려로 호들갑을 떨고 있다. 관련 기관에서 설명회를 열어 알쏭달쏭한 내용에 명쾌한 답을 얻고자 해도 또다시 알쏭달쏭하다는 하소연이 많다. 김영란법이란 서슬 퍼런 칼날이 휙 지나가면 누군들 살아남을까 하다가도 “각자 돈을 내면 문제없네”라고 안도한다. 김영란법은 우리 정서와는 잘 맞지 않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런 걸 가지고…” 신고한 데 대해 한심해 할 사람이 많이 나올 게 뻔하다. 지금 청탁금지법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겁을 먹으면서 청렴한 사회와 성숙한 기업, 공직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 될 거라는 사람도 많다.

 어제 본사 편집국에서 김영란법 설명회를 열었다. 이 시끌시끌한 법을 몰라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성원 변호사가 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 금지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많은 질문이 따랐다. 헷갈리는 부분을 질문하지만 완전히 미몽에서 깨어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데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 기자실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기자들에게 제공됐던 식당 쿠폰이 없어지고 기자 오찬석 등을 두는 배려도 사라지고 있다. 기자들이 기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받아왔던 배려를 내려놓아야 한다. 출입 기관한테서 대접받았던 식사자리를 가급적 줄여야 마음이 편하게 됐다. 이런저런 변화에 재빨리 발을 맞추는 게 상책이다.

 구한말 역사 이야기다. 1895년 11월 김홍집 내각이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는 단발령을 내렸다. 이 단발령을 내린 정치적 배경은 놔두고 이 혁명적인 조치에 당시 유교 윤리에 젖은 일반 사람들이 머리카락 대신 목을 내놓았다. 부모가 물려준 신체나 머리털, 살갗을 훼손하지 않는 게 효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상투를 자르라는 말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단발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집으로 사람을 맞이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개화를 상징하는 단발령을 두고 인륜을 파괴하고 야만인으로 전락시키는 조처라고 봤다. 그 당시 인륜이 밥 먹여주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단발령은 당시 사회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졸속하게 이뤄져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김영란법의 시행은 의리가 맛 먹여주는 사회는 안 된다는 역설이다. 실제 김영란법이 규정한 내용은 상식에 속할 수 있다. 부정 청탁하지 않고 남의 돈에 욕심부리지 않고 안 받으면 된다. 그런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복잡하다. ‘3ㆍ5ㆍ10 법칙’(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을 머리에 새겨놓고 밥을 먹고 선물을 받고 경조사비를 보낼 때 손가락으로 헤아려야 할 판이다. 의리를 생각하면 푹푹 주고 싶고 푹푹 받고 싶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성이 차지 않아도 잘 따라야 잘 살 수 있다. 앞으로 의리가 맛 먹여주는 사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세월호 사건 아픔 속에서 피어난 고난초(苦難草)다. 우리 사회 기본이 철저히 서지 않을 때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는 교훈 위에 세워진 김영란법이 단발령처럼 반발이 일어나 유명무실한 법이 되면 안 된다. 기본이 안 되면 기본을 철저히 익혀야 개인이든 사회든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법이 적용 대상을 과도하게 확대하고 인간관계와 문화까지 규율해 밥맛이 떨어지지만 기본을 세우는 데는 약발이 좋다. ‘애매한 부패’도 엄연히 부패고 어정쩡한 중간에서 이익을 보는 일을 의리로 치부해 넘길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의리에 목을 매지 않을 때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법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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