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세상이 확 바뀐다는 기대와 우려로 호들갑을 떨고 있다. 관련 기관에서 설명회를 열어 알쏭달쏭한 내용에 명쾌한 답을 얻고자 해도 또다시 알쏭달쏭하다는 하소연이 많다. 김영란법이란 서슬 퍼런 칼날이 휙 지나가면 누군들 살아남을까 하다가도 “각자 돈을 내면 문제없네”라고 안도한다. 김영란법은 우리 정서와는 잘 맞지 않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런 걸 가지고…” 신고한 데 대해 한심해 할 사람이 많이 나올 게 뻔하다. 지금 청탁금지법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겁을 먹으면서 청렴한 사회와 성숙한 기업, 공직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 될 거라는 사람도 많다.
어제 본사 편집국에서 김영란법 설명회를 열었다. 이 시끌시끌한 법을 몰라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성원 변호사가 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 금지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많은 질문이 따랐다. 헷갈리는 부분을 질문하지만 완전히 미몽에서 깨어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데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 기자실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기자들에게 제공됐던 식당 쿠폰이 없어지고 기자 오찬석 등을 두는 배려도 사라지고 있다. 기자들이 기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받아왔던 배려를 내려놓아야 한다. 출입 기관한테서 대접받았던 식사자리를 가급적 줄여야 마음이 편하게 됐다. 이런저런 변화에 재빨리 발을 맞추는 게 상책이다.
구한말 역사 이야기다. 1895년 11월 김홍집 내각이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는 단발령을 내렸다. 이 단발령을 내린 정치적 배경은 놔두고 이 혁명적인 조치에 당시 유교 윤리에 젖은 일반 사람들이 머리카락 대신 목을 내놓았다. 부모가 물려준 신체나 머리털, 살갗을 훼손하지 않는 게 효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상투를 자르라는 말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단발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집으로 사람을 맞이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개화를 상징하는 단발령을 두고 인륜을 파괴하고 야만인으로 전락시키는 조처라고 봤다. 그 당시 인륜이 밥 먹여주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단발령은 당시 사회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졸속하게 이뤄져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김영란법의 시행은 의리가 맛 먹여주는 사회는 안 된다는 역설이다. 실제 김영란법이 규정한 내용은 상식에 속할 수 있다. 부정 청탁하지 않고 남의 돈에 욕심부리지 않고 안 받으면 된다. 그런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복잡하다. ‘3ㆍ5ㆍ10 법칙’(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을 머리에 새겨놓고 밥을 먹고 선물을 받고 경조사비를 보낼 때 손가락으로 헤아려야 할 판이다. 의리를 생각하면 푹푹 주고 싶고 푹푹 받고 싶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성이 차지 않아도 잘 따라야 잘 살 수 있다. 앞으로 의리가 맛 먹여주는 사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세월호 사건 아픔 속에서 피어난 고난초(苦難草)다. 우리 사회 기본이 철저히 서지 않을 때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는 교훈 위에 세워진 김영란법이 단발령처럼 반발이 일어나 유명무실한 법이 되면 안 된다. 기본이 안 되면 기본을 철저히 익혀야 개인이든 사회든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법이 적용 대상을 과도하게 확대하고 인간관계와 문화까지 규율해 밥맛이 떨어지지만 기본을 세우는 데는 약발이 좋다. ‘애매한 부패’도 엄연히 부패고 어정쩡한 중간에서 이익을 보는 일을 의리로 치부해 넘길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의리에 목을 매지 않을 때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법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