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7:54 (금)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6.09.25 2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맹자는 등나라 문공이 정치강령에 대해 묻자 “생업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치의 가장 근본”이라고 역설했다. 또 제나라 선황이 인정(仁政)을 묻자 “백성으로 말하면 떳떳이 살아갈 수 있는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해 떳떳한 마음이 없게 된다(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 말처럼 가슴에 와닿는 말도 없다. 조선ㆍ철강ㆍ석유화학ㆍ해운ㆍ기계산업 등 전통적 강세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고 나머지 산업도 겨우 버티는 정도가 우리의 경제현실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근로자들은 산업의 역군이라는 자부심을 잃은지 오래고 어떡하면 잘리지 않고 직장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청년들은 취업절벽 앞에서 신음하는데 수명이 늘어난 노년층 대다수도 노후대책없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암울한 자화상이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어처구니 없는, 엽기적 사건은 먹고살기 힘든 우리사회의 내재적 모순이 그대도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0억 로또 당첨금 분배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찢겨진 가족의 이야기,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어린이집 교사의 상습적 유아 폭행, 부모이기를 포기한 듯한 자식 학대, 보복운전과 같은 폭발적 분노표출 등은 팍팍한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들이다. 민초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힘 있고 먹물 꽤 먹었다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맹자는“떳떳이 살아갈 수 있는 생업이 없으면서도 떳떳한 마음을 지니는 것은 오로지 선비만이 능히 할 수 있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고 했는데 맹자가 최근 우리나라 지도층이라고 하는 인사들의 행태를 보게 된다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다. 무기력한 민초들은 화나 있고 지도층들은 자기 뱃속 채우기에 급급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지난 20대 총선의 핵심화두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이번 추석민심도 역시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대비 워크숍에서 민생안정을 주요과제로 정했다고 한다. 지난 2일에는 ‘먹고사는문제 해결을 위한 의원연구모임’이 발족했다. 화난 민심을 읽어낸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일반국민들은 사드니 북핵이니하는 것보다 내 가족이 안전하고 따뜻하게 배불리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정치권은 입으로는 ‘국민을 위해, 민생을 위해’ 라고 발하면서 정작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거의 예외없이 민생의 종착점은 정쟁이었다. 물론 어떤 스님의 문제제기처럼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괜찮은, 돼지냐’ 하는 얘기가 나올 수는 있지만 민생문제에 여야가 정쟁없이 합의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이 민생을 이야기하면서 결의한 것은 “새벽부터 일해도 벌이가 시원찮은 영세 자영업자들, 모조리 저축해도 전세 값이 버거운 봉급생활자들,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생들, 나날이 늘어가는 노후생활비에 한숨짓는 은퇴 생활자들, 이들이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총선 민의를 받들어 오만과 불통, 반칙과 부패로 가득 찬 보수 정권 9년의 실정을 낱낱이 밝힐 것”이라며 “특권 경제를 끝내고 경제민주화를 통해 대한민국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말도 보탰다. 제대로 된 문제인식이라고 해도 결국은 타협없는 정쟁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를 제대로 했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이런 식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어떻게 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어찌하면 경쟁력은 높이고 양극화는 줄일 수 있을지 여야가 경쟁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보고 싶어한다. 알 수 없는 정체성 운운하며 정쟁을 벌이는 것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국민들은 정쟁은 정쟁이고 먹고사는 문제는 그것대로 처리하는 지혜를 기대한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다음 해 대선에서 국민들이 누구를 선택할 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