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과 지진 사이
미사일과 지진 사이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09.22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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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지진 공포가 우리 곁에서 스멀거리고 있다. 땅이 흔들리니 생활이 편할 수 없다. 북한은 핵실험을 미친 듯이 하고 하늘에 대고 툭하면 미사일을 쏘아 댄다. 하늘에서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몰라,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벼락 맞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부질없지는 않다. 지금까지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는 막연히 먼 훗날에 벌어질 일로 치부돼 현재의 안전을 선물 받는다. 요즘 일어나는 공포에 피부가 반응하고 있다. ‘무슨 그런 일이 벌어질까’라고 지금까지 입을 벌려 왔다면 요즘은 그 입을 쉽게 닫을 수 없다. 그 공포가 하룻밤 사이 몇 차례 꿈에까지 오르내린다.

 422, 423, 424… 지난 12일 저녁 경주에서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5.8 지진이 일어난 후 여진의 숫자가 계속 더해지고 있다. 24일 규모 7.0 지진이 온다는 괴담이 SNS에서 떠돈다. 경주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21일 점심을 운동장에서 쪼그리고 앉아 먹었다. 지진 걱정 때문이다. 지진은 우리의 일상을 확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가벼운 진동에도 집 밖으로 뛰쳐나온다. 원전 14기가 몰려있는 경주ㆍ부산 원전단지에 인접한 곳에 2개의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연구보고서가 공포의 실제성에 기름을 붓는다.

 요즘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미사일 위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정확도가 높아졌고 파괴력은 엄청나다고 인정한다.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이 이미 우리나라를 덮고도 남는다. 국회에서 북한이 핵무기로 공격할 징후가 있으면 선제 타격을 할 수 있는 독트린 같은 것을 확립해 놓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초소 2~3개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를 배치해야 한다거나 사드는 무용지물이라는 말까지 뒤섞인다. 원전의 위험성을 두고 원전 제로국가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고 맞선다. 생존 문제를 두고 무원칙하게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게 우리나라의 현주소다.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안전이 흔들리면 국민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미사일과 지진 사이에 국민의 얼굴이 굳어져 간다. 하늘에서 불이 번쩍하고 땅에 요동쳐 금이 쩍 가는 무슨 종말 영화에 나오는 화면이 실제 우리 앞에 펼쳐진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강변할 때 공포는 바로 우리 턱밑에 와서 우리를 위협한다. 엄청난 재난은 항상 그에 앞서 어떤 전조를 보여준다. 닥쳐올 재앙을 알고 미리 피하는 동물들의 본능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재앙은 지혜롭게 대비하는 게 상책이다.

 영화 ‘노아’를 보면 앞으로 땅을 뒤덮고도 남을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는 예언을 듣고 노아는 차분히 배를 만든다. 배를 만드는 기간이 자그마치 100년이 넘는다. 배를 만드는 동안 주위의 숱한 사람들이 노아를 조롱했다. “무슨 마른하늘에서 비 온다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라는 말을 노아는 들었을 게 분명하다. 현재가 편하면 미래도 편할 거라는 생각을 굳히는 게 보통사람들이다. 그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배를 타고 살아남았다. 영화에서는 몰래 그 배에 오른 다른 한 사람도 살아남는다. 훗날 닥칠 위기를 준비하는 데는 방법적인 차이는 날 수 있다.

 신고리 원전 4기 가운데 단 1기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할 때 일주일 이내 경남을 비롯해 부산ㆍ울산 주민 1만 6천240명이 피폭으로 사망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탈핵모임은 신고리 5, 6호기 건설 당시 실시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서도 원전의 중대사고는 아예 고려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남 등 부산 울산 800만 주민의 생사뿐 아니라 전 국민의 건강과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최악의 결정이라고 했다. 결론은 원전정책 전면적 재검토와 신고리 5~6호 건설 취소 등을 요구했다. 원전이 갈수록 안전을 위협하는 ‘미운 물건’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 이번 경주 지진보다 더 큰 지진이 오면 그 실제적인 위험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공포는 언젠가 실제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자주 하면서 실제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해 우리 머리 위로 쏠 수도 있다. 핵 위협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핵 위협의 긴장을 빨리 끊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그 긴장의 끈은 튀게 돼 있다. 위험한 물건을 들고 길길이 날뛰는 정신 빠진 사람을 초기에 제압하지 않으면 그 날 끝에 누가 다쳐도 다친다. 핵은 한 번 사용으로 그 피해가 너무 크다. 그래서 그 위험한 물건을 제압할 다른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철칙이다. 그 방어책을 만들어 놓고 상대를 구슬리든지 다른 묘책을 써야 한다.

 땅과 하늘이 편하지 못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불행하다. 생존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이슈이지만 맨날 생존만 머리에 두면 생활이 피폐해진다. 가을햇살이 마냥 정겨울 수 없는 것은 그 하늘에 핵 구름이 드리울 수 있다는 것과 가을 들녘의 풍요로움에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 들녘도 여진에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과 지진 사이에서 우리는 노아와 같은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미래의 위협을 현재의 안위를 바꾸려 하지 않고 미래의 위협을 실제로 받아들여 그 대비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국가 안보를 두고도 여야 공방이 본질을 벗어나는 판국에 이런 지도자를 믿어야 하는 것도 위험한 도박이지만 그렇다고 안 믿을 수도 없는 게 미사일과 지진 사이에 있는 우리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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