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6:31 (금)
지진 이전과 지진 이후
지진 이전과 지진 이후
  • 김혜란
  • 승인 2016.09.21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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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자꾸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메스껍기도 하고 작은 흔들림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땅이 꿀렁거리는 것 같다. 가까운 이웃들이 비슷한 증세를 호소한다.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단체로 위기다.

 지난 12일과 19일, 경주 부근이 진앙지인 지진이 발생했다. 겨우 일주일을 두고 난생 처음 땅이 흔들리는 지진을 두 번이나 겪었다. 가까운 일본에서야 심심찮게 있는 일이라 그냥 걱정만 해주면 됐지만 막상 우리 사는 한반도에서 땅에 금 가고 창문이 깨지는 지진이라니….

 뉴스와 기사들은 넘쳐난다. 그런데 하루 종일 눈을 부라리고 뒤져봐도 정작 필요한 정보가 없다. 우리나라에 지진이 어쩌다가 일어났고 왜 미리 몰랐는지, 지진 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거다 싶은 내용이 없다. 아무것도 못하고 앉아서 죽어야 하나 싶으니, 공포감과 분노가 함께 치미는 것을 어떤 심정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정리 한번 해보자. 이번의 두 지진은 부산과 경주, 울산을 잇는 170㎞ 길이의 양산단층이 자극을 받은 결과라고 한다. 지난 4월 동아시아의 연쇄 지진으로 양산단층이 불안정해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5.8 규모의 본진이 발생했고, 이후 땅에 쌓여있던 힘, 응력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4.5 규모의 지진이 생겼다는 전문가의 설명이다. 원인이다 싶은 내용이 밝혀져서 정말 다행스럽다.

 국민들의 분노가 끌어 오르는 일은 따로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지난 2012년 국민안전처의 의뢰로 연구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경주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양산단층대가 지진 가능성이 큰 곳이라는 ‘활성단층대’라는 결론을 냈는데도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양산단층에 밀집된 원전 주변 주민들의 불안감 등을 이유로 연구 결과 공개에 우려를 표명했고 일부 전문가도 과제 기간이 너무 짧아 조사가 불충분했다며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 연구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지진이 올 수도 있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만 있었더라도 과연 국민들이 지금처럼 무섭고 혼란스러웠을까.

 진앙지 50㎞ 안에 원자력 발전소 12기가 밀집해 있다고 한다. 고리원전 6기, 월성 원전 6기 주변의 영남권에는 1천만 명이 살고 있다. 부산을 비롯 영남권 사람들은 불안감을 넘어 공포에 휩싸여 있다. 그러면서 각자도생을 궁리한다. 생존배낭을 싸고 지진 대피 매뉴얼을 실제로 연습해 보기도 한다. 여전히 불안하고 무섭기만 하다. 한편, 메르스와 세월호에 이은 지진 관련 정부의 대책과 준비상황을 지켜보면서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허리 아래 주먹을 쥐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이라 불리는 일들이 수없이 많았다. 장마나 태풍, 가뭄 피해가 흔한 일이었다. 이 일들은 한반도 전체를 관통하기보다는 일정 지역에 큰 피해를 주고 지나갔다. 우리 지역만 겪기도 하고, 화면 보면서 걱정하고 큰 탈 없기를 빌어주기도 하며 잊었다. 자연재해나 천재지변도 지역이기주의랄지, 나만 괜찮으면 별 공포감 없이 넘겼다. 그런데 지진은 다르다. 한반도 전체를 엄습하는 공포다. 체감범위가 한반도 전체인 것이다.

 두 지진의 진앙지 근처이자 지진 피해가 큰 경주를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하는 일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며칠째 계속됐다. 선포됐으니 말이지만 섣불리 결론을 못 내고 있을 때 항간에는 서울에 지진 났어도 그렇게 미룰 것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서울 땅 밑을 지나가는 단층대도 안심할 수는 없다고 하니까.

 지진 관련 대책과 매뉴얼이 한시라도 빨리, 일본이나 미국식이 아닌 한반도의 것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다린다. 동시에 지진에 놀라서 엄습하는 집단 공포감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전문가들이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지진이 또 날 때 나더라도 일상생활은 계속해야 하니까 말이다.

 한 심리상담가의 말인즉, 지진으로 인한 불안감을 감춰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게 미리 걱정을 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상황을 보고 올라온 마음 그대로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면서 또 바로 해소하도록 노력하라는데, 그것은 이론이지 사람 마음이 그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토끼 같은 자식들 앞에서는 무서워도 무서운 척 못하는 것이고, 예측할 수 없는 지진이 앞으로 또 언제 어떻게 올지 걱정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마음 하나도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지진에 대한 공황장애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국민 전체가 지진대책과 대비를 세우는 일에 소리 높여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처음 맞닥뜨린 난리에 벌써 아노미 상태다. 국민이 각자도생이 힘들다면 정부가 나서서 지진 이전과 지진 이후, 모든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길을 보여 줘야 하지 않을까. 경주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 대상이다. 이럴 때 정부 덕 좀 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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