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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삼이사 추억마저 빼앗은 강 사업
장삼이사 추억마저 빼앗은 강 사업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6.09.18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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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유난했던 더위도 언제인 듯, 벌써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은 지나봐야 알듯이 콧등을 적신 더위도 물러간 지금, 그렇게 가을이 오더니 어느덧 한가위도 지났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란 넉넉함에다 부모님의 포근한 정(情)에 더해 고향의 추억에 흠뻑 젖고 싶지만 머릿속 저편에서 아련한 추억만 모락모락 피어오를 뿐이다. 그래도 소망하고 그려본다. 추석이란 게 날로 퇴색돼 가고 있다지만 내 고향의 부모형제, 친구들, 그리고 그 산하를 그려보는 것으로도 족해야 하는 현실이 못내 씁쓸하다.

 하지만 시공을 초월해 그때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껴야 하는 세상이니 어쩔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이 때문인지, 추석 때 찾은 낙동강은 어릴 때의 그 강은 아니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며 김소월이 읊은 ‘엄마야 누나야’는 개벽 1922년 1월호에 실린 시(詩)다. 낙동강이든, 아니든 가릴 것 없이 강은 반짝이는 모래밭과 무성한 갈대밭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4대강 사업 후, 그때 강은 꿈속에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강둑을 벗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개발되기 전 반짝반짝 빛나는 낙동강의 백사장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의 놀이터였다. 낙동강은 황강, 남강과 합치면서 큰 물줄기를 이룬 강물이 모래를 몰아와 쌓아놓은 백사장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이젠 모래 한 줌도 볼 수 없다.

 여름철 미역 감기에 한나절을 보냈고 강변 백사장의 모래 뜸질풍경도 찾을 수 없다. 겨울은 쩍쩍 갈라지는 얼음소리에 질급이지만 두껍게 언 얼음소리란 것에 추위도 잊은 스케이트장이었고 강변에 지천으로 깔린 재첩, 보리밥을 미끼로 물고기를 잡은 낚시터이기도 했다.

 살아있는 강, 자연의 강은 다채로운 수변 경관과 식생을 만들어내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기대할 게 없다. 지난여름은 징글맞게도 더웠다. 폭염으로 일상이 인내의 연속이었다.

 유별난 폭염 탓인지 녹조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낙동강은 녹조로 뒤덮여 푸른 물감을 뿌린듯하지만 공방만 오갈 뿐이어서 안타까움만 더한다. 백사장이 사라진 강은 강의 자격을 상실한 것과 다를 바 없다. MB정권이 수십 조를 쏟아부은 강 사업을 무엇 때문에 추진했는지, 또 그 결과가 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하천부지라지만 옥토나 다를 바 없는 강변 밭은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그 땅을 의지하며 지낸 어려운 삶의 현장이었기에 사라진 백사장과 옥토에 대한 애틋함만 더욱 되새겨 질 뿐이었다.

 낙동강이 강의 자격을 상실한 것은 MB정부(2008년 2월~ 2013년 2월)가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사업을 추진하면서다.

 4대강 사업은 총사업비 22조 원을 들여 4대강 외에도 섬진강 및 지류에 보 16개와 댐 5개, 저수지 96개를 만들어 4년 만에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로 추진됐다. 그러나 야당은 예산 낭비와 부실공사 우려가 있다며 대대적인 반대에 나섰고, 이후 정치적 논란은 계속됐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과 생태 복원을 내걸고 본격적인 착공에 돌입했다. 4대강 주변은 생활ㆍ여가ㆍ관광ㆍ문화ㆍ녹색성장 등이 어우러지는 다기능 복합공간으로 꾸민다는 계획 아래 사업이 진행돼 지난 2013년 초 완료됐다. 그러나 2013년 1월 감사원 감사 결과,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감사원은 앞서 2011년 초 발표한 4대강 1차 감사에서는 ‘공사비 낭비와 무리한 공기단축 외에 전반적으론 홍수 예방과 가뭄 극복 등에 4대강 사업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반면 2차 감사 때는 △설계 부실에 따른 보의 내구성 부족 △보강 공사 부실 △수질 악화 등 총체적 부실이라는 상반된 결론을 내놓았다. 살아 있는 권력 때와는 배치되는 결과란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무튼, 4대강 사업은 강의 영역을 침범한 면모를 띤 탓에 강의 자연성과 공공성 모두를 잃었다. 강 사업 이전에도 치수사업은 계속됐다. 강이 사람이 거주하는 영역을 침범(홍수)하지 못하도록 제방을 쌓되 제방 바깥쪽은 강의 영역으로 남겨뒀다. 이 때문에 자연이 물길과 경관을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강 사업 후, 백사장이 없는 강은 강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강 사업을 저급한 논리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강 훼손을 모르고 한 일이라면 어리석기 짝이 없고, 녹조논란에도 이런저런 잣대로 도피하려는 수단이라면 파렴치함이 도를 넘는다. 때문에 이 땅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바라는 것은 날 저문 줄 모르고, 밤 오는 줄 모를 정도로 추억이 아련한 낙동강, ‘모래사장’을 가진 살아 있는 강으로 되살아나길 원한다.

 가수 이미자는 ‘비 오는 낙동강에 저녁노을 깊어지면 흘려보낸… 저 강(낙동강)은 알고 있다’고 불렀지만, 아무리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도 금세 익숙해지는 존재가 사람이다. 이 때문에 수면이 녹조로 뒤덮이고 바닥은 늘 썩어 있는 강에 익숙해질 것이고, 훗날 낙동강이 현재의 모습이 본래 것으로 낙인 될까 봐 겁이 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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