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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욕망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09.08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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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꿈은 스스로 길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꿈 꿈 꿈’ 하니까 되레 꿈이 삶을 더 어지럽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꿈 대신 욕망을 넣어 ‘욕망은 인생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라 하면 수긍할 사람이 많다. 인간의 욕망은 인류사를 통해 끊임없이 분출됐다. 개인은 만족되지 않는 부와 명예를 쌓으며 욕망을 달랬고, 강대국은 욕망을 바깥으로 내뿜으면서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현재 개인의 욕망이 얽히고설켜 우리 사회는 거대한 싸움터가 돼 있다.

 신문만큼 재미있는 게 또 있을까? 하루마다 나오는 일간지의 기사량은 엄청날 뿐 아니라 섹션별로 나눠 싣는 정보도 다양하다. 마음먹고 다 읽을라치면 몇 시간이 걸린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대충 읽어 내리려 해도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사를 골라 읽는다. 자기의 욕망과 맞는 기사는 거침없이 눈에 들어오게 돼 있다. 신문에 실리는 하루의 역사가 진실이든 아니든 인쇄된 글이 주는 힘에 독자는 주눅이 들 수 있다. 신문에서 눈에 확 띄는 기사 제목(‘의제설정 이론’)에 현혹되기도 하고 의도를 깐 기사에 쉽게 넘어가기도 한다.

 욕망을 품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한 행동 때문에 신문에 이름을 올리고 여론에 따라 부침을 겪는다. 권력의 중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웬만한 힘이 가해져도 꿈쩍하지 않는다. 버티려고 온갖 ‘우’를 범하다 마지막에 결국 자리에서 내려온다. 자리를 유지하려는 욕망 때문에 판단을 흐려져 올라갔으면 내려올 때가 있다는 단순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 인사청문회나 국회 본회의장에서 쏟아지는 말에서 욕망은 얼마나 달콤한지 알 수 있다.

 사람의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욕망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직접적인 원인인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잠룡이 많다. 내년 대선을 향해 거대한 욕망의 물줄기는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잠룡들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를 두고 벌써 대권 꿈은 물 건너갔다는 말이 무성하다. 경남 미래 50년 사업을 추진하고 빚 없는 광역단체를 선언하며 힘차게 달리는 홍 지사의 발걸음에 제동이 걸렸다. 하늘을 오르려던 잠룡의 욕망이 꺾일 가능성이 높다.

 홍준표 지사의 실형 선고에 ‘안타깝다’는 반응과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는 반응이 교차했다. 경남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잠룡 반열에 있는 홍 지사가 승천하기 전에 물속에서 허우적댈 경우 또 다른 욕망의 거품이 일기 때문이다. 욕망의 추는 끌어당기는 쪽이 있으면 항상 그쪽으로 쏠린다. 욕망에 취하면 판단이 흐려지고 자신의 딛고 있는 바닥이 흔들려도 좀체 알아차릴 수 없다.

 홍 지사는 이번 실형 선고를 정치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대권 때문에 터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의 발을 묶어 놓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말을 숨기지 않았다. 이 말들의 참과 거짓은 시간이 더 흘러야 밝혀질 것이다. 항소를 하기 때문에 다시 법정에서 다퉈야 한다. 욕망의 충돌은 반드시 정의가 이긴다고 말할 수 없다. 여하튼 이 재판은 언젠가 끝나게 될 테니 대권 욕망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관심이 더 커진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욕망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욕망은 잠들지 않는다. 커피가 가장 대중적인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은 데는 ‘잠을 깨우는 힘’이 작용했다. 치열한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성한 의식이 필요한데 커피는 각성하려는 ‘검은 유혹’을 일깨운다. 커피가 잠을 몰아가면 사람들은 밤을 새워 욕망의 불을 당긴다. 밤새 눈 한 번 붙이지 않고도 욕망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친다. 성공하려는 욕망은 위 속으로 흘러드는 ‘검은 물’과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많은 인물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지면에서 화려하게 떠올라 사그라졌는지 헤아릴 수 없다. 욕망의 손길대로 몸을 맡긴 큰 용과 작은 용들이 관심을 받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금품 수수와 권력 남용으로 뒷덜미가 잡힌 이들이 내놓은 숱한 변명들을 추적해 읽어보면 소설보다도 재미있다. 욕망의 끝이 얼마나 치졸한지 자주 확인하지만 이런 일은 또한 반복되기 마련이다.

 커피를 즐기며 욕망을 불사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커피를 재배하는 일꾼이 있다. 커피는 착취당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지금이야 공정무역을 내세우며 그 착취가 덜해졌다 해도 예전에는 커피를 ‘흑인들의 땀’이라고 불렀다. 커피를 카페에서 즐기며 삶의 여유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고 커피를 생산하는데 값싼 노동을 판 사람이 있다. 커피를 마시며 검은 욕망을 일으키는 사람의 반대쪽에는 검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비친다. 욕망이 끝없이 되풀이되면 눈물도 끝없이 되풀이된다.

 독한 커피를 계속 마시면 극심한 위통으로 고생한다. 욕망 따라 춤춘 인생은 나중에 후회를 낳기 마련이다. 꿈은 스스로 길을 만들어도 욕망의 전차는 탈선해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욕망의 끝을 빨리 아는 사람은 말년이 외롭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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