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6:07 (수)
누가 우리 사회에 돌을 던지나
누가 우리 사회에 돌을 던지나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09.01 2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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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인간은 등을 꼿꼿하게 세워 걷는 직립 보행을 하면서 동물보다 경쟁력을 가지게 됐다. 머리를 쳐들고 다니다 보니 지능이 발달하고 특히 잔꾀를 부리면서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욕구까지 넘쳤다. 머리를 세우다 보면 자연스레 상대와 높이를 겨루게 되고 ‘나는 갑, 너는 을’이라는 구분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갑질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런 갑질 문화를 단번에 누그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부당한 권력을 행사할 때 갑질이 된다.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갑과 을로 부르고 우위에 있는 측을 갑, 그 상대방을 을이라 한다. 요즘 갑을관계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업주와 직원 등에 국한하지 않고 폭넓고 사용되고 있다. 갑질이 얼마나 밥 먹듯이 일어나면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은 취임 이후 첫 과제로 갑질 문화 척결을 내걸었을까. 갑질 횡포에 따른 부패와 부조리를 털어내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다. 100일간 특별단속을 하면 별의별 갑질 횡포가 나올 게 분명하다.

 갑질이 넘쳐나는 사회는 분명 건강하지 못하다. 백화점 점원을 무릎 꿇리고 삿대질을 하는 고객이나 객실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회항시킨 재벌 딸의 갑질에서 우리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교수가 대학원생에게 하는 갑질은 일반화돼 있고 큰 기업이 하청업체에게 휘두르는 갑질은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기업 회장은 자신의 운전사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툭하면 갈아 치우는 갑질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갑질은 약자를 얕잡아 보는 나쁜 심성에서 나오거나 평소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다 부당하게 힘을 쓰려는 우발적인 동기에서 나올 수 있다. 상습적으로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약자를 굴복시키고 종처럼 부리고 싶은 성향을 보인다. 오만하고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 다른 사람을 굴복시킬 때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족속들이다. 갑질을 잘하는 사람은 일종의 ‘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상황을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기보다 힘의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갑질은 힘에 기대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척결해야 할 사회악이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로 물들면서 더욱 복잡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갑질은 인종 차별로 번져갈 수도 있다. 다문화 가정과 탈북민 가정이 겪은 어려움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적응하기도 버겁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자아 정체성의 위기를 겪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는 사회문제다. 남들과 다른 용모 때문에 친구의 따돌림을 당하면 자신감을 잃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휘싸일 수 있다. 탈북민과 그 자녀도 사회 적응에 문제를 보이면서 우리 사회의 다른 ‘리그’로 떨어질 수 있다.

 미국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흑백 갈등은 그 역사가 오래됐다. 1776년 미국 건국 이후 백인들은 흑인들을 아프리카에서 강압적으로 데려와 노예로 삼았다. 흑백이 을과 갑으로 오랜 세월 고착돼 왔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원한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에 반발에 흑인들이 조준 사격하는 일이 대낮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긴 세월 동안 형성된 갑을 관계가 치유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다문화 가정과 탈북민 가정이 우리 사회에 편입되면서 다문화 사회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이런 흐름에 갑질이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더 지독한 갑질 문화가 생겨날 개연성이 크다. 갑질 문화 대신 관용 문화로 옷을 입지 않으면 앞으로 치러야 할 대가는 클 수밖에 없다. 작은 힘만 있어도 허세를 부리는 우리의 경박한 행동을 끊어야 한다. 나는 갑, 너는 을로 구분하는 우리 사회는 아직 다양성을 맞을 준비가 덜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성경에 나오는 얘기다. 어느 날 간음을 하던 한 여인이 예수한테 잡혀 왔다. 당시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여긴 유대인들은 예수가 이 여인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고자 했다. 그 당시 간음하다 잡히면 돌로 쳐 죽이라는 고약한 율법이 있었다. 사랑하라고 가르친 예수가 이 여인에게 율법의 잣대를 대는지를 알고자 했다. 예수는 잠깐 생각한 후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연인을 돌로 쳐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어른부터 아이까지 차례로 그 자리를 떠났다. 갑이라고 여긴 유대인은 예수의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다. 갑의 횡포를 휘두르는 사람은 자신을 을과 다르다고 여긴다. 실제 그들이 을이라고 생각한 여인보다도 더 추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모른다.

 갑질이 경찰의 특별단속으로 없어진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사회 곳곳에서 손에 든 돌을 내려 놓는 관용이 갑질을 물리칠 수 있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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