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4:21 (목)
아재 신드롬
아재 신드롬
  • 이광수
  • 승인 2016.08.30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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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나는 아재 마흔 넘은 아재/ 결혼도 안 했고 집도 없지만/ 걱정은 NO. 나만 믿어봐/ 한 번 만 털어 주면 다 쓰러지니까… 내가 부끄럽니/ 내가 실수했니/ 나는 너희가 좋아/ 우리랑 계속 놀아 주라.’ -그룹 ‘노라조’의 노래 ‘아재’에서-

 요즘 연예계를 휩쓸고 있는 아재 신드롬을 대변하는 유행가 가사다. 아재 신드롬은 아재파탈로 당당하게 무장해 팜므파탈의 대세에 맞장(?)을 뜨려는 기세다. 문학사에서 팜므파탈은 ‘악의 꽃’을 쓴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에르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 시에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의 10가지 태도를 정의해서 팜므파탈의 구체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 당시 유럽은 세기말적 풍조에 편승해 탐미주의와 니힐리즘(허무주의)이 풍미하고 있었다. 이러한 팜므파탈적 여인상은 20세기에 들어서서 영화와 광고에서 성의 상품화와 함께 필름 누아르에 아름다운 악녀로 각인된 배우 샤론스톤의 ‘원초적 본능’으로 그 이미지가 확고히 정립된다. 잔혹, 신비, 섹시, 탐미가 팜므파탈의 주 이미지로 개념화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장희빈이 한국적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대변할 수 있다. 그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나 탤런트들이 한국적 팜므파탈의 전형으로 그려졌다.

 아재파탈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맞서기라도 하려는 듯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아재, 아저씨, 중년남자로 연예계를 휘어잡으며 아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무척 흥미롭다. 아재파탈은 아재+옴파탈(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남성)의 합성으로 파생된 신조어다. 80년대를 풍미했던 오빠부대(조용필, 나훈아 키즈)는 가고 ‘아재부대’로 4~50대의 중년 남성들이 연예계의 변방에서 중심무대로 이동해 아재파탈의 신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문화 평론가는 여성의 사회진출로 남성들의 사회적 입지가 불안해지자 페미니스트들의 시대적 붐 조성 확장에 브레이크를 거는 4~50대 중년 남성들의 질투 섞인 저항쯤으로 평가 절하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재’라는 말은 어제오늘 생긴 호칭이 아니다. 계촌 호칭상 4촌 이상을 넘어서 5촌 이상을 지칭할 마땅한 호칭이 애매하다. 그래서 대개 아저씨로 부른다. 그런데 아저씨로 부르면 뭔가 서먹서먹하고 친근감이 덜해서인지 아재로 부른다. 아재라는 호칭은 일가친척이 아니라도 가까운 손윗사람에게 별 부담 없이 부르는 호칭이 됐다.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 집에서 일하는 일꾼(머슴)을 늘 아재로 불렀다. 삼촌이나 사촌 형 못지않게 가깝게 느껴졌고 그 아재도 나를 동생이나 조카처럼 잘 대해 줬다. 그래서 지금도 시골 가면 먼 일가친척 손위벌 되는 분들은 대개 아재로 통칭한다.

 우리 대중문화에 아재 신드롬이 불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병이 도진 게 아닌가 싶다. 코미디 프로인 88년도 개그도 철 지난 시절의 언어유희이기에 남녀노소가 모두 공감한다. ‘늘 배고픈 나라는 헝가리’ ‘제일 오래된 다리는 구닥다리’ 식의 언어유희는 지난날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자극한다. 근래 SNS를 후끈 달군 김흥국의 ‘안재욱 결혼식 때 왜 안 갔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맥락 없는 대화가 인기를 끈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배우 조진웅, 마동석, 이서진 등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것은 빼어난 외모(꽃미남)로 한류 붐을 타고 인기를 누리는 2~30대 배우에 비해 평범한 외모와 인간적인 따뜻한 이미지, 의리에 죽고 사는 정의파의 사나이로 다가오는 친근한 아재 캐릭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개저씨(개+아저씨) 즉 약자에 갑질하는 중년 남성을 비하하는 ‘꼰대’처럼 기성세대에 대한 풍자의 의미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때 배우 이순재 씨 등이 출연한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수명이 길어지고 다양성이 보편화 돼가는 시대를 맞아 아재 신드롬은 각 세대 계층별로 자신의 영역에서 끼와 역량을 발휘해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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