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16:15 (화)
마이동풍과 옥반가효
마이동풍과 옥반가효
  • 이광수
  • 승인 2016.08.24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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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박인비 선수가 리우 올림픽에서 대망의 골든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대미를 장식하는 라스트 라운드에서 연거푸 버디를 잡아 2위와의 격차를 벌리는 괴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동안 이렇게 철저하게 열심히 운동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늘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잘 끝난 것을 보면 운도 따른 것 같다.”

 마지막 퍼트를 성공한 후 남긴 집념의 승부사가 던진 멘트이다. 여기에 그녀의 매력인 겸손함이 보인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운도 따라 줬다고 한 것은 자만심을 경계한 진정한 프로 골퍼의 면모다.

 나는 골프를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골프를 칠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는 공직에 종사했기 때문이다. 부자놀음이라는 편견을 갖게 한 높은 라운딩 비용은 골프에 대한 일반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을 고착시켰다. 차제에 골프도 국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퍼블릭 코스 확충 등 대중스포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제 리우 올림픽도 막을 내렸다. 밤잠을 설치며 중계방송을 보느라 에어컨을 켜놓아 전기요금 폭탄이 은근히 걱정된다. 아무리 벽걸이용 소형이라고 하지만 누진제가 적용되면 매스컴에서 떠드는 것처럼 요금폭탄은 필연적이다. 폭염으로 온열병에 걸려 병원신세를 지느니 차라리 요금폭탄을 맞는 게 낫겠다 싶어 켜놓고 지낸다. 하도 매스컴에서 겁을 주는 바람에 아이쇼핑 피서라고 할 요량으로 백화점에 들렀으나 끝없이 이어진 출입구 차량행렬에 포기하고 귀가하고 말았다.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고 글 쓰고 책 읽는 것이 취미이자 밥벌이 보조 수단(?)인 나로서는 두 달 정도의 경제적인 부담과중은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미증유의 폭염사태로 2천여 명이 온열병으로 입원하고 16명이나 사망한 자연재해급 비상사태임에도 불구하고 꿈적 않는 산통부의 불통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희망이나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일이나 사람에겐 일찍 단념하는 게 상책이라고는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마이동풍식 마이웨이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문득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탐관오리 변사또를 징벌하기 위해 걸인 차림으로 사또 생일잔치 날에 나타나 읊은 시조가 생각난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性膏)라

 촉루락시(燭淚落時)에 민루락(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

 금잔의 맛좋은 술은 천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더라

 이 시조는 조선 중기 사간원 헌납과 사간을 지낸 청백리 성이성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왜 갑자기 이 시조를 들먹이게 됐을까. 백성의 소리(민심)를 외면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행태가 이 시조가 풍자하는 의미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토크쇼에서 집권당 지도부와 대통령이 함께한 오찬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을 봤다. 한반도 사드 배치문제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고, 폭염으로 사람이 죽어나는 판에 이름도 생소한 옥반가효로 오찬회동을 가졌다니 유구무언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심의 뭇매를 맞았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집권여당의 앞날이 훤하다. 더구나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농수축산 농어가와 대중요식업소들의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마당에 똥오줌을 못 가리고 있으니 한심하고 답답할 뿐이다.

 이제 처서도 지났으니 전기료문제는 수면 아래로 잦아들어 없었던 일로 흐지부지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가 되면 다시 이런 사태가 반복될 것이다. 17년 동안 역대 정권이 서민의 삶과 직결된 전기요금제도 하나 제대로 해결 못 했으니 어느 누가 전ㆍ현 정부와 국가 지도자를 신뢰하고 존경하겠는가.

 지난 2007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한 후 3만 달러의 문턱에서 10년째 멈춰 서 있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민심이 천심임을 간과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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