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9:47 (토)
복수는 아름답다
복수는 아름답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08.18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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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복수의 칼은 시원하다.’ 한여름 책 속으로 휴가를 떠난다. 돈이 거의 들지 않은 휴가이고, 웬만한 동네 도서관에 가면 무한정 에어컨을 쐴 수도 있다. 전기세 누진제 걱정은 더더욱 할 필요가 없다. 옛날 글깨나 읽은 선비들은 책 몇 권으로 여름을 났다. 실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사람들은 시원한 집을 놔두고 바깥으로 나가 사서 고생을 한다. 바닷가가 시원하기는 하지만, 오가는 과정이 만만찮고 설사 그곳에서 물속에 몸을 담그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작열하는 태양이 더 이글거린다. 개인적으로, 휴가를 보낸답시고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해수욕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연민의 정이 들기도 한다. 더위를 피해서 해수욕장에 가지만 그곳에서 더 큰 더위를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속으로 떠나는 휴가는 희한하게도 휴가를 거창하게 보내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더운 여름철에 소설 읽기는 냉수 같은 유혹한다. 두툼한 소설책 한 권을 읽고 있으면 더위는 엄습하지 못하고 주위에서 뱅뱅 돈다. 그 맛이란 게 유명한 맛집의 냉면보다 쫄깃하고 그 시원하기는 팥빙수보다 훨씬 낫다. 책 속에서 만나는 복수는 여름철 장대 같은 소나기를 맞는 기분이다. 김진명의 소설 ‘황태자비 납치사건’이 이런 기분을 선사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에 경복궁에 일본 깡패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그 현장에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참상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충격적이다. 힘없는 나라의 국모(國母) 유해 곁에서 일본인 깡패들은 온갖 더러운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는 한 나라의 자존심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것도 모자라 짓밟아 버린 극악한 행동이었다.

 이런 추잡한 행동을 한 일본에 대해 복수의 칼을 든 책이 ‘황태자비 납치사건’이다. 한국인이 가부키를 관람하는 일본의 황태자비를 납치하는 발상은 통쾌하다. 일본 황실을 모욕하는 납치 사건은 100여 년을 훨씬 뒤로 물러가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겹치면서 마음 가운데 복수의 칼을 춤추게 했다. 소설에서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명성 황후 살해 현장에 서면 독자는 분개하게 되지만, 일본 황태자비가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해 뼈저리게 아파하는 마무리에서 독자는 복수의 칼을 거두게 된다. 복수의 칼을 칼집에 넣을 때 복수는 더 시원하다.

 요즘 부는 금수저ㆍ흙수저 바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괴심을 끓어오르게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 하는 세상에 사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퍼질러 앉고 싶다.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세상에서 위를 보지 못해 어디를 봐야 할지 눈만 굴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주위에 간혹 나타나는 영웅들은 마른하늘에서 내비치는 한줄기 소나기다. 이런 영웅들은 흙수저 바람을 타고 높은 하늘을 차고 오른 사람이다. 세상에 대고 착한 복수를 한 사람들이다. 복수가 복수를 부르듯, 이런 영웅들이 ‘작은 자’를 깨워 영웅의 꿈을 꾸게 한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출현은 다시 한 번 숟가락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표는 자신을 무수저 출신이라고 했다. 이 무수저가 다른 금수저를 제치고 여당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것도 호남 출신으로 보수 여당의 대표가 됐으니 대단한 무수저의 반란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무수저가 금수저 중 금수저가 됐으니 진짜 무수저인 서민들을 보듬어 줄 것을 주문했다. 자칭 무수저 출신 대표가 흙수저 서민들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고 그들의 편에 설 때 아름다운 복수를 하는 것이다. 이 대표가 지금 보이는 파격적 행보나 형식을 깨는 언변은 기존 정치 금수저에 대한 항변이 돼야 한다.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의 탈북이 잇따르고 있다. 외교관과 해외식당 종업원 등 북한 금수저들의 잇단 탈북에 북한은 해외검열단을 급파하는 등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이들 금수저가 자신들의 체제에 등을 돌리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금수저가 자신이 몸담았던 둥지를 박차는 희한한 복수극이 계속 상영될 거라는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복수는 아름답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부끄럽게 하는 세상은 살맛이 넘친다. 칼을 겨눈 사람에게 따뜻한 손으로 맞서는 사람은 마음이 행복하다. 행복한 책 읽기로 불볕더위를 잡는 피서법이 가장 저렴하면서 최고라고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름다운 복수를 하고 있다. 이런 복수자가 많으면 분명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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