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8:37 (수)
올림픽도 사람이다
올림픽도 사람이다
  • 김혜란
  • 승인 2016.08.10 2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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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올림픽이 한창이다. 며칠 동안 보았던 리우 올림픽 중에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개막식에서 성화를 최종 점화한 리마 선수다.

 마라토너인 리마 선수는 제28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쳤다. 1위 자리를 굳힌 채 줄곧 질주하던 막바지에 관중이 뛰어들어 리마 선수를 밀쳤다. 15초 만에 다시 일어섰지만 결국 금메달은 남의 것이 됐다. 2위도 내어주고 동메달을 목에 걸어야 했다. 억울해서 통곡이라도 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뒤늦게 들어오면서도 관중석을 향해 환한 웃음을 선사했다. 자신은 그래도 행복하다는 인터뷰를 전하면서…. 반전 있는 드라마였다. 이번 성화 점화 때도 그때의 활짝 웃는 미소를 세계인에게 선사했다. ‘머시 중헌지’ 아는 사람이다.

 오래됐지만 리마 선수의 올림픽 정신에 입각한 당시의 인터뷰와 미소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많은 선수들이 약물을 쓰면서까지 목에 금메달을 걸려고 애쓴다. 경쟁만이 본질이 돼 버린 것 같은 올림픽 판에서 만난 리마 선수의 미소는 요즘 유행으로 말하자면 ‘사이다’ 자체였다. 짧게는 십수 년을, 길게는 수십 년을 세계 정상, 아니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달려왔을 선수에게 그런 날벼락 같은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미소와 ‘행복하다’는 마음표현은 금메달 이상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런데 리마의 그런 행동이 브라질 국민성이 낙천적이고 선한 데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리마 개인의 인성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방송을 수십 년째 하지만 늘 힘든 일이 있다. 새로운 출연자를 결정해야 할 때다. 방송 역시 협업이어서 제작자가 혼자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가나 진행자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하고 의논해서 결정할 때가 많다. 방송생활을 오래 한 죄(?)로 새로운 출연자 결정에 대한 견해를 물어올 때, 정말 난감한 경우가 있다. 알고 있는 상식으로 문제없다 싶으면 유쾌하지만, 지역에서 오래 버텨온 탓에 여러 사람들의 정보를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정보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아닐 때는 난감해진다.

 라디오 방송 출연자의 조건이 몇 가지 있다. 패널로 함께 할 때는 기본적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의사전달이 순조로워야 한다. 재미있고 공감력 있게 말을 한다면 금상첨화다. 흔히 전문성은 있는데 말이 어눌하거나, 말은 곧잘 하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면 결정하는데 고심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가장 핫한 조건인 외모는 보지 않는다. 라디오니까. ‘보이는 라디오’도 하지만 텔레비전처럼 외모가 모든 조건을 제치고 우선이지는 않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있다.

 라디오 출연자인데, 말 잘하고 전문성 있으면 됐지 조건이 또 있느냐고 물어올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 요즘 각종 방송사에서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결정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프로그램 자체가 곪아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바로 대인관계다. 인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대인관계라고 해서 두루 아는 사람이 많은 마당발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다. 같은 분야의 사람들에게서 알게 되는 정보들이 있다. 속 깊은 사정이 있는 경우는 제외하고라도 많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전문가라고 해도, 스캔 뜨듯이 정보를 좌악 훑어보다가 이 부분이 딱 걸리는 경우, 함께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오히려 전문성은 좀 떨어져도 대인관계에 문제가 없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몇백 배 낫다. 문화예술 분야를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 워낙에 이쪽 종사자들이 특이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개별 개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대인관계에 적신호가 켜진 사람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그 분야의 전문가이고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에게는 입속의 혀처럼 구는 사람이라도, 자신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포기한다. 왜냐고? 방송은 공공매체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전국에서 인재가 몰려드는 서울과, 만들어진 인재를 찾기가 힘든 지역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능력주의로만 일관하다 보면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 방송이 가진 공공성은 영향력이 막대하다. 방송은 왜 하는 것이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놓친다면 사람이 아닌 또 다른 괴물의 출현을 막을 길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빈 구석이 있지만, 자신 정체성의 기본을 놓치면 사람 아닌 것이 된다. 영화<곡성>의 무당들이나 <부산행>의 좀비들이 된다. 그런 것들이 많아지면 아포칼립스의 출구도 사라진다. ‘머시 중헌지’ 아는 존재가 그립다. 리마 선수는 사람의 기본을 놓치지 않아서 팬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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