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2:46 (금)
부자가 덜 존경받는 사회
부자가 덜 존경받는 사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08.04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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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벌어지는 모순은 역사와 함께 자라 왔다.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실제 모순이 덧칠돼 있다. 거대한 자본에 노동자는 목을 매고 자신의 권리를 부르짖으며 바위 치기를 한다. 숱한 노동자의 눈물을 기름 삼아 거대 자본은 잘 굴러간다. 노동자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힘든 삶을 되뇌일 때, 자본가는 와인을 마시며 노동자를 더 몰아붙일 궁리를 한다.

 우리의 피 속에는 무리에서 구별되고자는 바람이 섞여 있다. 오랜 옛날 우리 선조들이 협업으로 맘모스를 사냥할 때도 역할 때문에 다퉜을 수 있다. 맘모스 앞에서 약을 올리는 부류는 위험수당을 많이 받아야지만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맘모스 옆쪽에서 바위 뒤에 숨어 창을 던졌던 부류는 그나마 안전이 보장됐다. 이들이 일터로 나갈 때 협업을 당연히 받아들였겠지만 하는 일의 위험도에 따라 불만은 속에서 꾸물댔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서로 협업하면서 가졌던 모순은 결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눠지면서 정리가 됐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그어진 선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요즘 노동자 가운데서 귀족 행사를 하는 종족이 있다. 이들은 자본가 옆에서 다른 노동자와 구별되는 방법을 배웠는지 모른다. 귀족이 되려는 바람은 우리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욕구일 수 있다. 사회 전반에 모순의 카펫이 깔려 있어도 이 모순에서 ‘창’을 쥐려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가진 자를 존경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금수저를 휘두르는 사람을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다.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는 힘들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힘들뿐더러 용이 되려다 지렁이로 전락하는 사람들은 곳곳에서 견고한 사회구조를 탓한다.

 아웃사이더의 반란은 사회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펌프다. 이들이 있어 고착화되는 사회에서 늘상 밑에서 기는 사람들이 희망을 그릴 수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트럼프의 부상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막말을 쏟아내 위기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보면서도 얼마나 당당한가라는데 생각을 모으면 이 발칙한 아웃사이더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억만장자다. 이도 저도 안 돼도 그는 전세기를 타고 세상 어디에 가서 즐길 수 있다. 젊고 예쁜 아내와 함께.

 세상을 단순구조로 펼쳐 보면 가진 자는 항상 못 가진 자 위에 군림한다. 이래서 못 가진 자는 가진 자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억지로 존경하기까지 한다. 부자를 존경하는 사회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인간은 돈에 굴복해 살지만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을 겉으로는 내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제인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기업인에서 이건희 회장이 1위를 차지했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쓰러진 후 인기가 시들해진 건 그렇다 쳐도, 최근 성 매수 의혹이 불거지면서 존경심을 철회한 사람이 넘쳐난다.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덮어두고 넘어갔던 이런저런 불공정 행위는 애써 외면하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건희 회장이 가진 엄청난 돈 때문에 그를 존경했다. 그가 넘지 말아야 했던 선을 넘었는지, 아니면 드러나지 않아야 했던 일이 세상에 알려졌는지는 애매하지만 그를 존경했던 사람들은 큰 실망을 했다.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를 따르고 싶다는 말이다.

 존경하는 사람을 돈 많은 사람에 두면 실망하기 쉽다. 그래서 부자를 존경받은 사회를 성숙하다고 말할 수 없다. 돈이 권력인 사회는 천박한 사회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돈 때문에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한다. 그래도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는 곤란하다.

 가진 자는 못 가진 자에게 아량을 베풀 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로 서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르지만 그 희생을 생각하는 가진 자는 없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든, 운이 좋아 살면서 금수저를 매일 사용하든 우리 사회에서 금수저와 흙수저의 모순을 지워내기는 힘들다. 역사가 말해주듯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한배를 탈 수가 없다. 거대한 모순의 강을 사이에 두고 함께 손을 잡기는 심히 힘들다. 이는 역사가 말하고 현재 우리 사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부자를 덜 존경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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