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4:28 (금)
시간의 덫
시간의 덫
  • 김혜란
  • 승인 2016.08.03 2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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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다. 속도는 물론이거니와 시간이 흐르는 방법, 심지어 시간이 흐르는 방향, 같이 겪은 시간도 다른 해석이 나온다. 결국 제대로 소통하려면 자신의 시간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시간도 따라서 흘러야 한다.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다. 한 악기를 긴 시간 동안 다루다 보면 사람이 악기의 시간을 따라 살아간다. 악기마다 가장 자연스러운 속도가 따로 있는 것도 신비하다. 높은음을 주로 담당해서 내는 바이올린은 높은 소리를 내는 일과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첼로는 저음을 내기에 편하고 동시에 차분하고 느린 소리가 장기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그 악기의 특성을 닮아간다. 악기 연주로 소리를 찾아내고 소리를 만들어 내는 일은 창조 작업이다. 그래선지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민한 편이다. 세상에 없는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어 내려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주자는 악기자체를 자신처럼 생각하거나 적어도 악기와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리라.

 시간의 관점에서 악기연주자를 본다면 어떨까. 바이올린 주자는 예민하고 빠르게 활을 문질러서 소리를 찾아내다 보니, 다른 일에도 속도가 민첩하다. 다른 악기주자에 비해 더 빠르고 날렵하다. 예민의 ‘끝판’ 을 보여주기도 한다. 첼로주자 역시 예민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악기의 연주속도와 닮아서 생활 속 판단이나 실행도 빠르게 서두르지 않는다.

 말하는 속도도 악기를 닮아간다. 예를 들어서 바이올린 주자와 첼로 주자는 ‘빠르다’는 말의 체감온도가 다르다. 협연을 준비할 때, 빠른 곡이나 느린 곡을 하자고 해서는 서로 생각하는 곡들의 속도에 너무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바이올린 주자에게는 느린 곡도 첼로 주자에게는 무지 빠른 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생각 속 속도로만 이야기해서는 협연이 성공하기 힘들다.

 일상 속 시간의 속도는 어떨까. 분명히 언제까지로 약속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누군가 한쪽만의 속도로 일의 진행을 약속했을 확률이 높다. 다른 한쪽이 마지못해 응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시간속도는 다를 것이다. 서로 이해할 수 없어지고 힘들어진다. 그냥 ‘불통’이라고만 여기지만 깊숙이 들어가면 시간에 대한 흐름이 서로 달라서 그런 것이다.

 순리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빠르고 느린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시간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그런데 시간이 거꾸로 흐르거나 흐르지 않고 멈춰있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형 인간은 늘 지난 시간에만 매여 있다. 심지어 지난 시간을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그 시간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일본의 독도 주장이나 역사 왜곡을 줄기차게 하는 그들이 그런 무리들이다. 과거의 부를 잊지 못해서 안간힘을 쓰거나 지난날 추억바라기에 취해 살아가는 부호들, 별을 몇 개씩 달고 있다가 불명예로 퇴역한 장군들, 지난시절 영광과 권력이 영원하기를 바라거나, 잃어버린 권력을 지난 시절로 되돌리고 싶은 정치가들이 과거형 인간에 속할 것이다. 이들의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정치인들의 시간 개념은 중요하다. 국민은 그들의 시간개념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오늘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향한 청사진을 속삭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자신만의 과거를 지키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대화나 연설 중에 과거지향형 이야기가 자주 나오거나 항상 과거의 일에 지향점을 둔 인물이 있다면 경계 대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거나 빠르게 가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과거에 멈춰버렸거나 현실과 미래를 과거로 끌고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반도의 꽤 많은 미래의 시간을 과거로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의 시간을 괘념치 않고 무시하고 그들의 원하는 시간만을 강요한다.

 누구는 현실만이 시간이라고 한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현실만이 진짜라고 한다.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현실을 제대로 살아내는 일이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만드는 일이지만, 현실만 생각해서는 우리를 감싸고 흐르는 21세기의 거대한 시간흐름에서 밀려나고 말 것이다.

 현실의 시간을 살면서 동시에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를 감싸고 흐르는 시간을 과거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이르기까지, 동시에 볼 수 있는 눈과 귀,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시간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첼로처럼, 또 바이올린처럼 시간을 살아야 한다. 그들의 시간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한 가지 속도와 방법만으로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과 속도로 시간을 기획하고 흘러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새처럼 살아야 할 것 같다. 새는 오른쪽 눈으로 과거를 보고 왼쪽 눈은 미래를 보면서 날개로는 힘차게 현실을 살아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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