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01:34 (일)
배리어 프리 여행
배리어 프리 여행
  • 한중기
  • 승인 2016.08.02 2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중기 한국인성교육협회 교육위원
삶의 틀을 벗는
힘을 주는 여행,
여정을 떠나는 순간
자유세상을 만난다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더위를 피한다는 이유 하나만 대도 어디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위를 피해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래서 피서철이라 했던가. 지난 주말 사흘 일정으로 설악산 여정을 잡아 놓고 달포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혹서기 산행이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으로 물거품 되면서 한동안 충격과 실의에 빠져 지냈다. 급격한 컨디션 난조로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면서 건강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갖게 됐고, 그로 인한 정서적 혼란이 마치 아포리아 상태에 빠진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의 혼미한 심신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이 무더운 삼복 여름날에. 어느 날 갑자기 왜소하고 초라해진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일단은 아무 생각 없는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병상에서 마치 생중계하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서 행렬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미디어를 접하면서 신체적 장애와 여행의 상관관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점 그나마 위안이라 여긴다. 또한 이 기간 중 가까운 지인이 건네준 책 한 권이 신체적 장애와 여행에 대한 편견을 떨쳐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돼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어리석게도 몸이 불편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한 장애인의 유럽 여행기를 숙독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배리어 프리 여행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우게 한 주인공은 홍서윤이다.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20대 마지막 청춘을 보내는 게 못마땅했던 그녀가 휠체어를 비행기 삼아, 기차 삼아, 여객선 삼아, 또는 패러글라이더 삼아 세계를 누빈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를 출판했다. 한국방송 최초의 여성 장애인 앵커 출신,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마친 그녀의 눈에 띄는 이력보다 세상을 향해 겁 없이 뛰어든 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스토리 텔링이 더 진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여행은 틀을 벗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는 확신과 ‘여행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고 있는 저자의 자기 확신은 자칫 여행자의 단순한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여타 여행서와 확연히 다른 메시지를 주고 있다. 스스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대단해져 버렸다는 그녀. 그냥 남들처럼 똑같이 평범하게 비행기 타고 유럽여행을 하고 싶었던 게 전부였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자꾸만 ‘대단하다’고 해서 대단해져 버렸단다. ‘장애인 혼자 장거리 비행, 장거리 여행을 하는 일이 대단해야만 하는 걸까?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처럼 평범한 일이 될 수는 없는 걸까?’를 자문하는 그녀의 물음에 세상은 어떻게 답해야 할까. ‘직접 경험했던 스위스 여행은 한국과는 달리 일상 그 자체였다. 휠체어로 버스 타고, 기차 타는 일이 어렵지 않았고,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도 쉽게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 술회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그녀의 바람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장애인이 일상처럼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만들어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 없는 즉, 배리어 프리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명백히 보이는 장벽과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고, 많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무장애 도시’를 천명하면서 각종 시책을 펼치고 있는가 하면 배리어 프리 여행, 건축, 영화제작이 작지만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추세이나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고령화 시대의 대명사 이웃 일본에서는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배리어 프리 여행을 상품으로 한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특히 10여 년 전부터 배리어 프리 여행을 지역의 재생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순수 민간단체가 만들어져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고, 배리어 프리 투어 센터를 곳곳에 만들어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공간을 초월해 스스로를 가두었던 틀을 벗어나게 하는 힘을 지닌 여행, 누구든 그 여정을 떠나 만나는 순간 그곳이 어디든 배리어 프리 여행지가 되는 그런 세상을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