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역류 (1)
분노의 역류 (1)
  • 이영조
  • 승인 2016.07.21 0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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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전화벨이 울리면서 조용하던 상담실에 순식간에 적막이 깨지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현재 제1상담실에서는 상담이 진행 중이다. 상담의 리듬을 깨지 않으려고 서둘러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굵직하고 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림잡아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성은 “거기가 심리 상담소 맞습니까?”라고 물어왔다. 그러더니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내가 상담을 받아 보려고 전화했습니다. 그리곤 현재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죽여 버리고 싶은 몇 놈이 있는데… 그놈들을 죽이고 내도 확 죽어버리려고 예~” 전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는 몹시 격앙돼 떨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장의 그림이 떠올려졌다. 이 사람과 과연 정상적으로 상담을 진행할 수 있을까? 혹시 상담과정에서 난폭한 행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런 우려를 하고 있는 중에도 상대편에서는 자신의 분노를 계속 토해내고 있었다. 또 한편에서는 섣부른 판단으로 한 사람이 벼랑으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분이 그토록 흥분하는 이유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어보기로 했다.

 “저~ 선생님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씀을 해 주세요” 이쪽에서 부드러운 톤으로 말을 건네니 상대방의 목소리도 조금 차분해졌다.

 전화로 30분이 넘도록 이어진 그분의 이야기는 이랬다. 친구, 가족, 동료의 중상모략 등 악의적인 행동으로 인해 받은 정신적인 피해가 너무 가혹했고 그에 대한 억울함이 분노가 돼 지금은 오로지 그 사람들을 모두 없애버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죽이고 자신도 죽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상대방이 너무 격앙돼 있어서 일단 상담센터에 내방 하셔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설득하고 전화를 끊었다.

 두어 시간 지났을 즈음 중년의 남성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조금 전에 통화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분의 모습은 잠을 잘 자지 못한 듯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도록 권해 줬다. ‘휴∼’ 하고 한숨을 몰아내 쉬며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모습에서 불안함이 전해왔다.

 “잘 오셨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차를 마시는 동안 조용히 기다려 줬다.

 잠시 뒤 상담실로 자리를 옮겨 상담을 시작했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는데 1시간이 부족했다.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억울함과 그로 인해 싸였던 울분과 분노, 감정의 찌꺼기를 끝없이 끄집어냈다. ‘그동안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오롯이 헤아리기 위해 집중하며 호응을 보내줬다. 직장 동료와의 불화로 직장을 그만두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잦은 부부싸움이 이혼으로 이어졌고 가정의 해체로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리고 혼자 방황하는 시간들이 계속되면서 우울증이 발병되고 정신과적 치료를 받으며 무의미한 삶을 살아온 그런 일상이 계속되면서 삶의 근간을 모두 잃어버렸다.

 상담은 마음 내려놓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시간이 흐르자 내담자는 깊은 한숨을 내 쉬기도 하고 호흡이 멈춰버린 듯 얼굴이 창백해지기도 했다. 그러더니 답답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며 상담실을 뛰쳐나갈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잠시 후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을 힘들게 만든 직장 동료에 대해 또다시 욕을 하며 죽여 버리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음을 다시 안정을 시키고 모래를 만지도록 했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 모래를 만지며 놀았던 기억이 있었지요?” 물끄러미 모래를 바라보다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툰 동작으로 모래를 만지기 시작했다. 모래를 만지는 투박한 손이 그동안 살아온 삶을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손으로 전해오는 모래의 까칠한 느낌은 자신도 모르게 철없이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분노의 감정으로 가득한 얼굴은 천진한 동심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손등에 모래를 얹어놓고 두드리며 두꺼비 집을 짓기도 하고, 모래를 손바닥에 가득 올려놓고 밑으로 흘려 떨어트리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어린 시절 속으로 끊임없이 빠져들고 있다.

 흥분과 분노에 사로잡혀 현재의 자신을 파괴시키고 있는 심중의 화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을 안도와 함께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제저녁 퇴근길에 친구와 술 한 잔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필자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줬다. 그 말에 곧바로 해명을 하며 친구의 충고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에 피식하고 실소를 한다.

 그냥 ‘알았어… 친구야, 조언해줘서 고마워~’ 하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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