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6:10 (토)
특별도시에서 평범하게 살려면…
특별도시에서 평범하게 살려면…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07.14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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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못 믿어도, 인간의 도시 창조는 믿는다. 도시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현재 도시를 만들기 때문이다. 도시는 문명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거대한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사람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이 도시에 산다. 대부분 사람들은 도시를 만드는 주역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자치단체장이 도시를 만드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도시의 경제가 살고 죽고, 문화예술이 피고 지는 게 자치단체장의 능력에 달렸다. 그래서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고, 자치단체장은 지금 도시를 부활시킨다’라고 해도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어느 도시에 사는가는 현재 삶의 질을 좌우한다. 창원시는 지난 1일 문화예술특별시를 선포했다. 창원시민은 특별시에 살 게 돼 특별한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특별시가 말로만 되면 무척 뻐기며 살 수도 있을 텐데 그게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실제 모든 사람이 존엄하다고 가정하면 모든 도시의 문화도, 더 나아가 예술도 존엄하다. 도시문명을 이룬 역사 속 도시를 보면 자연환경과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시민의 합의가 녹아 있었다.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도시 지도자의 리더십에 달려있다. 창원시민은 행복하다. 안상수 시장은 지난달 30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후반기에는 광역시 승격, 첨단산업 육성, 관광산업 활성화, 문화예술특별시 건설에 시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광역시 승격은 향후 정치 여정에 따른 포석으로 보이고, 첨단산업 육성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약속이고, 관광산업 활성화를 언급하지 않으면 자치단체장으로서 자격이 없다. 마지막에 언급한 문화예술특별시 건설에 귀가 솔깃하다. 아무리 먹고사는 문제가 급해도 문화예술에 마음을 두지 못 하면 폼나는 삶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포식까지 이어졌으니 창원은 문화예술이 넘실대는 참 좋은 도시라는 착각을 할 수도 있다.

 문화와 예술이 있는 도시에 살면 삶에 여유가 생긴다.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마당’이 잘 마련되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렇다면 창원시민들은 앞으로 문화예술특별시로 빛나는 곳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누리면서 덤으로 광역시민이 될 수도 있다. 참 괜찮은 유혹이다. 인구 유출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화예술특별시라 해도 가장 기본적인 삶이 편하지 않으면 특별시 권리를 포기할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다. 창원시가 다른 도시에 비해 도시기반이 낫다고 해도 매일 맞닥뜨리는 삶은 그렇지 못하다. 아침 출근길부터 열을 받는다. 주차한 차를 몰고 나가기가 예삿일이 아니다. 이중주차가 돼 있으면 옆을 막고 있는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해야 한다. 아침부터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주택지나 아파트 단지 시민할 것 없이 차를 쉽게 몰고 출근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어떤 날에는 도로 모서리에 주차해 놓은 차 때문에 요리조리 피하면서 차를 운전해야 한다. 공용 주차장 입구에 차를 밤늦게 대고 다른 차량출입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파렴치한 운전자를 보면 창원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런 작은 일에 목숨을 건다고 딴지를 걸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람들은 거창한 문화예술 도시보다 주차하기 편한 도시에 살고 싶어 한다. 아마 조사해 보면 주차 편한 쪽으로 쏠릴 게 분명하다. 창원시민은 아침 출근 때 치르는 전쟁을 퇴근 후 다시 치른다. 삶이 편할 턱이 없다. 주차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퇴근길에 주택단지를 돌아다니며 주차 공간을 찾는 데 또 힘을 빼고 나면 사는 게 녹록하지 않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어째 이게 작은 일인가. 하루 삶을 열 받고 시작해 또 열 받고 마치는데….

 1994년 뉴욕시가 치솟는 범죄율 때문에 고민이 컸다.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맞섰지만 범죄는 줄지 않았다. 폐쇄회로(CC) TV를 달아도 범인 얼굴을 잘 식별하지 못해 효과가 없었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인 낙서를 지우고 도시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작은 일이 큰일을 해냈다. 범죄 도시 뉴욕을 안전한 도시로 만든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창원시가 거창하게 문화예술관광 도시를 표방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주차문제가 걸림돌이 되면, 시민들은 문화예술 생활을 내동댕이칠지 모른다. 이게 ‘신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도시에서 매일 되풀이되는 생활에서 불편을 겪으면, 더 나은 문화예술 생활을 포기할 공산이 크다. 창원시는 시민들이 문화예술특별시보다 ‘주차 편한 평범도시’를 바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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