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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카츠와 자서전 쓰기
슈카츠와 자서전 쓰기
  • 이광수
  • 승인 2016.07.10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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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세계 각국이 고령사회로 접어든 가운데 일본에서는 100세 장수시대를 맞아 은퇴 후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슈카츠(終活)가 대유행하고 있다. 슈카츠는 문자 그대로 끝내는 활동, 마무리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한자 종활(終活)의 일본어 카타카나식 발음이다. 슈카츠는 죽기 전 장레, 묘지, 유품정리, 상속절차의 준비가 기본으로, 점차 발전해 임종과 노후관련 보험 및 자산운용을 포함하는 죽음 비즈니스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슈카츠 비즈니스 규모는 1조7천억 엔대로 점차 그 규모가 커지고 있어 실버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의 슈카츠 붐은 2010년 독신 노인의 장례절차와 유언을 적어 두는 공책인 ‘임종노트’라는 책의 등장을 계기로 시작됐다고 한다. 이 책은 당시 5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일본은 1947~1949년생인 이른바 단카이 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2010년경 본격 시작되면서 슈카츠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슈카츠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준비 작업을 하는 가운데 죽음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됐다고 한다.

 대개 슈카츠를 실천하는 노인들은 은퇴 후부터 ‘엔딩노트’를 일기장 쓰듯이 작성한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사후에 누군가가 자신의 죽음 뒤처리를 잘해 줄 수 있고, 인생의 마무리를 보다 확실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자기 삶의 마무리 점검인 셈인데 준비성 좋은 일본인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요즘엔 젊은 세대들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진 때문인지 슈카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고 한다. 더욱이 ‘엔딩노트’라는 영화까지 제작 상영돼 그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특히 초고령사회의 진전에 따라 독신세대가 전체 가구의 32%에 이르고, 부부만의 세대가 20%에 달해 연간 고독사가 3만 건에 달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됐다고 한다.

 이런 일본의 슈카츠 열풍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노인 자서전쓰기운동이 붐을 이루고 있다. 서울시의 어느 구청 평생교육원에서 시작된 노인 자서전쓰기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지자체의 노인강좌로 개강돼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의 ‘엔딩 노트’나 ‘노인 자서전쓰기’나 내용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다. 죽음이라는 용어에 민감한 한국인에겐 슈카츠의 ‘엔딩노트’ 보다 ‘노인 자서전쓰기’가 훨씬 품위 있고 그럴싸하게 보인다. 얼마 전 경기도 화성시의 어촌마을 백미리에 사는 열일곱 분 노인들의 자서전 출판에 관한 기사를 읽고 느낀 게 많았다. 한 대학교 광고디자인과 교수와 학생들이 한 학기 학습과제로 ‘어르신 자서전 쓰기’를 정했다고 한다. 섬마을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구술로 받아쓰기를 해서 100쪽 분량의 자서전을 한 권씩 만들어 드린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창원시에서도 2016년 노인특수시책의 하나로 ‘노인 자서전 쓰기’ 강좌를 개설했다. 창원시 창원ㆍ마산ㆍ진해 노인지회가 운영하는 노인대학과정에 자서전 쓰기 강좌를 신설해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다. 창원과 진해 노인대학 자서전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나는 어르신들의 수준에 맞는 교재를 직접 제작해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애로도 있다. 지식깨나 든 사람도 글쓰기를 두려워하는데 7ㆍ80대 어르신들이 직접 자서전을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써 오면 체계를 잡아 잘 정리하고 다듬어 사진도 넣고 해서 예쁜 자서전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독려하며 강의하고 있다. 일본 슈카츠의 엔딩노트와 한국의 노인 자서전쓰기는 내용상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국의 자서전 쓰기가 좀 더 품위 있고 폼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질곡의 삶을 끈질기게 이겨 낸 자신들의 지난 삶을 정리하는 ‘노인 자서전쓰기’운동이 한층 더 널리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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