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7:53 (수)
경남 지방의회 완장 노름
경남 지방의회 완장 노름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6.07.07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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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경남 지방의회마다 난리다. 달리 난리가 아니라 지방의원들이 후반기 의장선거에서 보여준 수준 이하 행동 때문에 ‘의원 나리’의 몸값이 하한가다. 지금까지 지방의원들이 지역 주민의 눈높이에서 의정활동을 하지도 않았지만 요즘 의원들의 도도한 행동을 보면 지방의회의 뿌리까지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풀뿌리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선 지방의원들은 말 그대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주민과 대면해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지방의정에 반영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시ㆍ군 행정부를 잘 견제해 주민의 살림살이가 제대로 나아지도록 힘을 써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방의회 후반기 의장선거가 파행을 겪으면서 이런 지방의회가 왜 필요한지 토를 안 달 수 없다. 지방의회 무용론에 기름을 부은 최고 히트작은 의령군의회 의장선거를 둘러싸고 나온 혈서각서다. 후반기 의장으로 나온 특정 후보를 밀어주기로 하고 피로 지장을 찍었다. 그 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면 2억 원을 보상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담았다. 이쯤 되면 TV 드라마에서 보는 범죄집단의 막가파 행동 이상이다.

 사천시의회는 여당 외 의원이 퇴장해 2차 투표가 중단됐고 다음 날에는 정족수 미달로 임시회를 열지 못해 의장을 뽑지 못했다. 거창군의회는 의장 후보가 너무 많아 선거 날짜를 연기했다. 김해시의회에서도 볼썽사나운 드라마를 연출했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의장 선거 결과를 두고 욕설을 주고받으면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창원시ㆍ함안군의회처럼 새누리당 의원이 분열돼 무소속 의장이 당선된 것은 애교로 봐줄 만하다.

 실제 지방의원들은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역에서 어깨에 힘주고 살면서 좋은 이름 하나 더 달겠다고 지방의회에 진출한다. 그렇게 되면 속된 말로 ‘지역 유지’가 된다. 이런 좋은 걸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떤 이유를 속에 품고 지방의회에 발을 내밀어도 출발은 지역 주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자세가 우선해야 한다.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지방의원의 책무가 얼마나 가치가 없는지를 의장선거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무슨 수를 부려도 서로 손잡고 감투를 쓰면 그뿐이라는 생각하는 그들에게 민생 지방정치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말라비틀어진 꽃 한 송이보다 못하다.

 어느 지역을 가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어른이 있다. 젊은 시절 돈을 모아 고향을 위해 내놓은 ‘큰 손’이나, 인품의 향기가 주위에 울려 존경받는 ‘큰 그릇’도 있다. 지역 주민들이 흠모하는 어른들이 많아야 우리 사회는 더 맑아지고 살만한 곳이 된다. 이런 분들이 큰 그늘을 만들어줘야 따가운 세상 가운데서도 살맛이 나는 법이다. 지역주민 3만 명이 안 되는 의령군에서 10명 안팎의 군의원이 이번에 벌인 드라마는 군민을 슬프게 한다. 큰 손이나 큰 그릇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조막손이나 종지 같은 의원을 보면서 씁쓸한 눈물이라도 뿌려주면 너무 튀는 행동일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완장이 힘을 발휘한다. 무슨 감투라도 하나 쓰면 목소리를 높이는 게 우리 지역사회의 수준이다. 지난해 3월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에서 온갖 난리를 떨면서 완장을 차기 위해 혈안이었다. 숱한 후보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 좋은 자리에 앉아 완장의 힘을 누려보겠다는 복심을 다 알지 못해서 그렇지 속마음을 들춰보면 가관일 게 뻔하다. 조합장이 농협 직원을 입맛대로 자르고 공금을 개인 주머니에서 꺼내듯 하는 나쁜 짓이 넘쳐난다. 이 모든 게 완장을 차면 가지는 짜릿한 특권이다.

 이번 경남 기초의회의장 선거가 파행을 겪으면서 주민의 눈총을 받았지만 그나마 쓰레기통을 뒤져 꼬깃꼬깃 접은 1천원 지폐를 주운 것 같은 행운은 야권 돌풍이다. 새누리당이 다수인 지방의회에서 새누리당의 내부 분열에 따른 실망감과 소속 의원 간에 팽배한 불신이 몰고 온 결과다. 이러나저러나 나름 여야가 힘의 균형을 어느 정도 맞춰 지방의회가 활기를 띨 수도 있다는 바람을 바람결에 보낼 수 있어 다행이다.

 지방의원은 그 지방의 어른이다. 어른은 체통이 있어야 대우를 받는다. 한 지역주민이 내뱉은 “선거 때 온갖 좋은 말로 아양을 떨어 표를 받아 놓고, 의원이 되면 싸움만 한다”는 한숨이 더 없어야 한다. 완장을 찬 후에 완장에 줄 하나 더 그으려고 싸움박질하지 말고 조용히 완장을 빼놓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완장을 자신이 차고 거들먹거리면 추해 보인다. 완장은 지역주민이 채워줄 때 빛이 난다. 그래야 어른 대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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