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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가마터와 김해도예촌
분청사기 가마터와 김해도예촌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07.06 2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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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문화ㆍ체육부장
 도자기의 성지 김해에서 문헌에 기록된 분청사기 가마터가 처음으로 발굴됐다.

 김해는 지난해까지 20회째 분청도자기 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도자기의 고장이지만, 그동안 분청의 고증자료나 학술연구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분청 도자기의 고향’라는 정체성 확립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었다.

 그런데 지난 6월 30일 상동면 대감리 발굴현장에는 김해도예협회 회원들이 다수 참여해 김해 분청사기 가마터 발굴 현장관계자로부터 발굴결과에 대한 설명과 출토유물들을 살펴보았다. 김해도자기의 역사성과 진위성이 더욱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번 조사대상 지역 일대는 삼국시대 대감리 지역의 유력집단 묘역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 전기에 감물야촌(甘勿也村)이라는 분청사기 요업단지가 조성된 중요한 유적임을 확인했다.

 가마터가 발굴된 대감리(大甘里)라는 지명은 과거 ‘대감물야리’에서 나온 것이고 이곳이 1424~1469년 김해도호부 자리에서 북동쪽에 있었던 점으로 미뤄 발굴단은 가마터 주변이 조선시대 분청사기 요업단지였다는 설명이다.

 조사결과, 조선시대 전기(14세기 말~15세기 중ㆍ후반) 분청사기 가마터 1개소와 폐기장 3개소, 삼국시대 석곽(石槨) 2기가 출토됐다. 가마터는 초벌실과 소성실 일부가 확인됐으며 소성실은 8차 이상, 초벌실은 2차 이상 보수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가마폐기장 3개소 중, 1호 폐기장은 면적 약 266㎡로 최대 두께 3.5m 이상에 이르는 대규모 폐기장으로 가마가 사용되던 시기보다 더 빠른 시기로 확인됐다. 조업시기가 약 100년에 달해 현재 발굴부지 주변에 분청사기 가마가 대규모로 잔존할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총 3천64여 점이다. 1호 폐기장에서는 분청사기 발ㆍ접시편과 ‘사선(司膳)’명이 시문된 저부편, 2~3차 유물퇴적층에서 1~2조의 원권문에 연판문이 시문된 발ㆍ 접시류와 ‘장흥(長興)’명이 흑상감된 접시 등, 4~5차 유물퇴적층에서 기면전체에 집단 연권문, 집단국화문 등이 가득히 시문되거나 ‘김해(金海)’, ‘공(公)’, ‘용(用)‘명이 백상감된 발ㆍ접시류, 6차 유물퇴적층에서 승렴문과 귀얄문이 시문된 분청사기편과 백자편이 다수 출토됐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조달ㆍ관리하던 관청인 ‘장흥고(長興庫)’가 새겨진 자기도 발견돼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했다. 생산된 자기 표면에 납품될 정부 기관명을 적어 공납용임을 밝혔던 것이다. 가마터 부근에는 낙동강이 있어 당시 생산된 자기를 배에 싣고 수로를 통해 한양까지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김해도호부 동쪽에 하품(낮은 품질)을 생산하던 감물야촌에 1개의 자기소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가마터가 발굴된 ‘대감리(大甘里)’라는 지명은 과거 ‘대감물야리’에서 나온 것이고, 이곳이 1424~1469년 김해도호부 자리에서 북동쪽에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발굴단은 가마터 주변이 조선 초ㆍ중기 집단 도자기 생산지였던 것으로 결론을 냈다.

 김해 분청사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중간단계로 15~16세기 번성했던 생활자기여서 서민적이면서도 독특한 예술성을 띠고 있다.

 김해는 지역 곳곳이 각종 유물과 유적으로 산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장유면 수가리 패총, 농소리 패총, 봉황대 패총, 예안리 고분군, 양동고분군, 대성동 고분군 등은 선사시대 문화와 가야시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적이다. 특히 토기는 일본을 비롯한 가야가 신라에 복속 통합된 후에도 그 양식은 신라, 백제, 고구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김해분청사기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의 첫 성과는 이루어졌다고 본다. 김해도예협회 관계자들은 김해에는 상동면 대감리 가마터 등 12곳에 옛 가마터가 분포돼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면서 지역에 산재돼 있는 옛 가마터를 발굴, 보존해 지역 도자산업의 역사적 당위성을 정립시켜야 하고, 전통과 미래가 공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제 고증자료와 학술활동을 통해 전통을 계승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분청사기를 역사적인 고증에 맞추어 재현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창조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분청사기의 메카는 600년 전 이 땅에 흙과 불과의 만남을 이룩한 선조 사기장들이 얼과 혼을 우리가 되살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지금 이 일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

 시간은 더 이상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김해의 사기장들은 별다른 도움 없이 전국에서 열리고 있는 도자기 축제와 외국에서 열리는 축제에도 벤치마킹을 하러 다니고 있다. 이미 문경, 이천, 강진 등에서는 도예촌을 조성하고 국내외 기관, 자치단체들과의 공조와 협력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축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경남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옛 가마터 발굴, 보존과 관련 학술행사에는 반드시 도예협회가 참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어느 날 발굴됐으니 구경이나 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과업에 그들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청 관계자와 김해도예협회와의 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도예협회도 조직 내에 대외협력부서나 비상대책부서 등이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 김해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는 도자기 공방이 일본의 아리타나 다케오와 같이 김해 도예촌이름으로 뭉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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