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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의 눈물’과 ‘거제의 피눈물’
‘말뫼의 눈물’과 ‘거제의 피눈물’
  • 박춘국 기자
  • 승인 2016.06.30 2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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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국 편집부국장
 지난달 26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이 지가변동률 하위지역 1위와 2위에 거제시와 울산 동구의 이름을 각각 올렸다. 지난해까지 공시지가 상승률 전국 1위를 기록한 두 곳의 땅값 추락폭 최고치 경신은 부동산업계에서 큰 사건으로 여겨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거제와 울산은 근동 복부인들의 가장 인기 있는 투자처였고, 고수익을 보장하는 희망의 땅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날개 없는 추락을 시작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달 거제시는 전월(4월)보다 땅값이 0.17% 하락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가 위치한 장평동의 땅값이 전월 대비 1.51% 떨어졌고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인접한 능포ㆍ두모동은 0.52%, 옥포조선소가 위치한 아양ㆍ아주동은 0.31% 내렸다. 울산 동구는 지난달 땅값이 전월에 견줘 0.08%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거제시와 울산 동구의 땅값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두 도시 땅값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울산시 공시지가는 2006년 1㎡당 평균 3만 4천137원에서 7만 2천131원으로 111.3% 올라 시ㆍ도 가운데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거제시 공시지가는 1㎡당 평균 1만 3천495원에서 3만 9천297원으로 190%나 뛰어서 시ㆍ군ㆍ구 가운데 상승률이 최고였다.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 공시지가가 1㎡당 평균 2만 6천761원에서 4만 5천86원으로 68% 오른 것을 고려하면 거제시와 울산시의 땅값은 말 그대로 거침없는 하이킥이었다. 조선업 위기설이 한창이던 올해 초까지만 해도 거제시와 울산 동구의 땅값은 보합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거제시는 지난 3월, 동구는 지난 4월 지가변동률이 전월 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추락에 시동을 걸었다.

 추락의 끝은 어딜까? “거제시는 관광산업이 일부 있지만, 조선업이 지역경제 대부분을 차지해 한동안 지가변동률이 플러스로 반등하기 어렵겠다”는 감정원 관계자의 말은 거제에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사둔 이들에게는 날벼락이 따로 없는 이야기며, 추락의 끝을 보여준다.

 조선업 호황으로 오랫동안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이 지역에 찾아온 지가 추락은 여럿 중의 하나로 꼽히는 위기 징후의 단면일 뿐이다. 이들 지역민 일부는 “큰 문제 없다”, “조선소 수주잔량이 많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잠시 주춤할 뿐이다”라는 말로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큰 폭의 추락을 경계한 허세’쯤으로 받아들인다. 아울러 여러 과학적 지표들이 두 지역의 한 없는 위기 연속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다 곳곳에 늘어만 가는 임대주택 공실, 짓다가 중단된 원룸, 미분양 상태로 방치된 아파트 분양 사무실과 견본 주택, 주인이 버리다시피 하고 떠난 빈 상가들은 시작일 뿐이고 등 돌린 투자자들이 언제 다시 발길을 돌려 돌아올지 기약이 없다.

 심지어 두 지역 추락의 끝을 ‘말뫼의 눈물’에 까지 빗대는 이들도 있다. 말뫼(Malmo)는 ‘광석 모래 땅(砂地)’이라는 뜻의 스웨덴 지명으로 1658년까지 덴마크령이었던 스웨덴 남쪽 끝에 있는 항구 도시다. 말뫼는 한자 동맹 때에는 청어잡이의 기지였으며, 1775년부터 근대적인 어항 시설을 갖춰 상업, 공업의 중심 도시로 조선ㆍ제당ㆍ직물ㆍ기계ㆍ화학ㆍ고무ㆍ연초ㆍ양조 공업 등이 발달했다.

 또 말뫼의 눈물(Tears of Malmoe)은 현대중공업 육상건조시설 한복판에 자리 잡은 높이 128m, 폭 164m, 인양능력 1천500t급 골리앗 크레인의 별칭으로 ‘코쿰스 크레인(Kockums Crane)’이라고도 한다. 자체중량 7천560t으로 당시로는 세계최대 크레인이었다. 말뫼의 세계적 조선업체 코쿰스(Kockums)가 문을 닫으며 매물로 내놓은 것을 2002년 현대중공업이 막대한 해체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사들였다.

 지난 2002년 9월 25일 말뫼 주민들은 크레인의 마지막 부분이 해체돼 운송선에 실려 바다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없이 아쉬워했고 스웨덴 국영방송은 그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말뫼의 눈물’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거제와 울산의 지가하락과 경제 추락을 보면서 나오는 ‘말뫼의 눈물’은 이제 ‘거제의 눈물’과 울산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더 슬픈 장송곡과 함께 두 곳에 설치된 중장비들이 어느 나라로 단돈 천 원에 팔려가지 않을지도 모를 위기를 경계하는 비유로 들린다. 두 곳의 주민과 지도층 인사들은 그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호황을 누리면서 오늘의 위기를 대비하는 데 소홀한 면은 없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 되돌아봄은 더 큰 위기(거제의 피눈물)를 막아 줄 것이 자명하다.

 거제와 울산의 위기탈출을 위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 주도의 관공선과 노후 여객선 조기 발주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가 움직여 줄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오히려 비싼 임대료를 주고 외국 선박을 빌려 써는 우리 해운업계에 정부가 채권 발행 등을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 배를 건조해 싸게 빌려주는 방안이 나아 보인다. 조선업계도 구하고 부실의 늪에 등 달아 빠져 있는 국내 해운업도 돕고, 여기다 저금리 기조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이들에게 은행보다 높은 이자 수익도 보장해 준다면 한꺼번에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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