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2:08 (수)
임진왜란 시작은 언제인가
임진왜란 시작은 언제인가
  • 안명영
  • 승인 2016.06.26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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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 진주 명신고등학교장
효과적인 역사 공부 위해
개전 날짜 속히 정리돼야

 임진왜란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고 10만 명 이상의 조선인이 전쟁 포로로 끌려갔으며, 소중한 문화재가 소실되거나 훼손되고 한반도가 초토화됐다. 명나라의 멸망 원인이 되고 청나라가 중국대륙을 지배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역사 공부는 같은 비극은 되풀이하지 않고 장점은 오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데 있다. 6ㆍ25 전쟁을 이해하는 자료가 되는 임진왜란의 학습을 어렵게 하는 것은 개전 날짜가 아닐까! 임진년에 일본의 침입을 임진왜란으로 부르며, 2차 침입은 정유재란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정유재란을 포함해 7년간의 싸움을 말한다. 임진년에 시작해 무술년에 끝난 전쟁인데 임진왜란이라 해야 할까. 임진왜란의 임진은 주갑(周甲)이 되고 서기로 몇 년으로 환산되는가.

 임진왜란의 시작 날짜는 언제인가? 독특한 진폭의 억양, 달필의 판서 등으로 청중을 휘어잡는 교수의 ‘임진왜란은 왜 불행한 역사의 사건인가?’라는 TV강의를 시청했다.

 “1592년 4월 13일 오후 4시 부산을 통해서 약 500여 척에 5만여 명의 왜군이 쳐들어왔다. 만약 이때 부산을 지키던 장수가 무려 20시간이 넘게 현해탄을 건너온 왜군의 움직임을 수상하게 여기고, 불화살만 제대로 날렸더라도 어쩌면 하루 만에 임진왜란은 끝날 수 있었다”고 했다.

 4월 13일이라는 개전 날짜에 대해 권위 있는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선조실록 26권, 선조 25년 4월 13일. 임인. 1번째 기사에 왜구가 침범해 왔다. 적선이 바다를 덮어오니 부산 첨사 정발은 마침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다가, 조공하러 오는 왜라 여기고 대비하지 않았는데 미처 진에 돌아오기도 전에 적이 이미 성에 올랐다. 발은 난병 중에 전사했다. 이튿날 동래부가 함락되고 부사 송상현이 죽었다.

 진주박물관 안내 책자에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일본군의 부산진 공격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20일 만에 한양이 점령당하고, 일본군이 두 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까지 진출하는 등 전쟁 초기 일본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이었다’로 소개하고 있다.

 4월 14일이 개선 날짜라는 근거를 역시 조선왕조실록에서 볼 수 있다.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4월 14일. 계묘. 1번째 기사에 14일 왜적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침략해 와서 부산진을 함락시켰는데 첨사 정발이 전사하고, 이어 동래부가 함락되면서 부사 송상현도 전사했다.

 선조실록에 4월 13일 부산진, 다음날 동래성 함락되고 선조수정실록에는 4월 14일에 차례로 함락돼 개전일은 1592년 4월 13일 또는 4월 14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서 여수에서 전황을 보고받는다.

 난중일기 임진 4월 15일. 갑진. 맑음. 나라 제삿날(성종의 비 공혜왕후 한씨)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해질 무렵에 경상우수사(원균)가 보낸 통첩에, “왜선 구십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에 정박했다”고 한다. 즉각 장계를 올리고 겸해 순찰사 이광, 병마사 최원, 우수사 이억기에 공문을 보냈다.

 선조 수정실록에서 임진왜란이 발생한 날짜를 하루 차이로 기록됐다. 수정본이 나왔는데 왜 초본을 파기하지 않았을까.

 선조 수정실록은 임진왜란 발발을 시점으로 24년과 65년 후에 각각 완성됐다. 신뢰도와 타당도에 기준을 두고 어느 실록으로 결정하는가에 연구과제로 활발하게 진행 중이겠지만, 효과적인 임진왜란 학습을 위해 개전 날짜가 조속히 정리돼야 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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