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괴담의 정치학
인터넷 괴담의 정치학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6.06.19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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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살기가 고단해지면 인심이 흉흉해진다. 사람이 날카로워지고 유언비어가 나돈다. 사회적 신뢰지수도 떨어진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이야기가 나돈다. 이런 말을 전하는 사람은 마치 엄청난 비밀을 용케도 알아낸 ‘깨어 있는 시민’으로 잘도 둔갑한다. 순진한 사람은 뭐가 뭔지 헷갈린다. 이런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모르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이런 말을 전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자신도 믿지 않다가 말을 전파하면서 저도 모르게 진실인양 믿게 된다.

 최근 인터넷과 시중에는 얼토당토않는 괴담이 유령처럼 떠돈다. 그중에 ‘유병언이가 살아있다’는 말이 있다. 정부와 딜해 사망한 것을 위장했다는 것이다. 연예인 박유천의 유흥업소 화장실 사건은 정부가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말도 나돈다. 여종업원들의 잇단 화장실 사건 폭로 뒤에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박유천이가 불쌍하다는 말도 덧붙여 있다. 옥시사건의 최근 언론 노출 빈도 감소는 영국 옥시본사가 정부에 엄청난 뒷돈을 준 결과라는 말도 있다. 세월호 구조활동 당시 배에서 수백t의 쇠가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한 다이버가 비닐하우스에서 의문사했다는 괴담도 있다. 이 괴담들이 최종적으로 향하는 지점은 정부다. 정부가 실정을 호도하기 위해 다른 이슈거리를 만들거나 부패한 사람들과 뒷거래를 했다거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을 처리했다는 내용들이다.

 우리 사회의 인터넷 유언비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독버섯처럼 생겨났다. 천안함이나 세월호 같은 정부를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있을 때는 혁명을 부추길만한 내용이 등장했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여학생 사망설과 성폭행설, 전경의 진압명령 거부설,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때 허위 예비군 동원령 등이 단적인 예다. 이런 괴담이 생겨나고 유포되고 힘을 얻는데는 뭔가 이유가 있다. 정치에는 그다지 관심없는 평범한 주부들 사이에서마저 이런 이야기가 떠다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체제전복세력의 음모로 치부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사회가 건강하고 희망이 있다면 이런 괴담은 설 자리가 없다. 먹고살기 힘들고 미래를 어둡게 보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다. 불만은 뭉치게 마련이고 뭉치면 에너지를 얻는다. 인터넷상의 이런 괴담들은 단순히 불만세력의 배출구로만 치부할 수 없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두 계층으로 나눠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직원과 중소기업직원, 대기업노조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근로자와 세력화되지 못한 지리멸렬한 노동자, 이런 식으로 신분이 양극화되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후자의 국민들은 무너진 신분상승의 사다리 밑에서 어쩌면 절망과 싸우고 있다. 한때 활발했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일자리 절벽, 일감 절벽, 희망절벽 앞에서 경제적 약자들은 돌파구를 찾기 마련이다. 정부가 돌파구를 마련해 주지 못하면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 괴담은 그중 한 가지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기반을 위협하는 위험신호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데 정치는 둔감한 건지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건지 도무지 복지부동이다. 총선 민심은 서로 힘을 합쳐 잘해보라고 했는데 정치권은 희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주도권 잡기에만 혈안이다.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과 기회주의자들은 국민의 불만과 기득권세력의 무사안일을 먹고 자란다. 이러다간 다음 대선에 한국판 트럼프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기성 정치권 전체가 퇴출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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