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47 (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 김금옥
  • 승인 2016.06.08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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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김해삼계중학교 교장
 아파트 주변의 창원천에 어리연꽃이 피었다. 주남저수지에도 연꽃이 만발했으리라 짐작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며 카메라를 들고 남편 앞에 섰다. 컴퓨터 앞에서 뭔가 열심히 하고 있던 남편은 내 모습을 보더니, 그러자며 따라나섰다. 저수지로 가는 차 안에서 어제 있었던 학부모 독서동아리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에 미쳐 있는 것 같아?”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는 ‘마루맘’이라는 학부모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매월 한 권의 책을 읽고 모여서 생각과 느낌을 교환한다. 이달의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으로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우리는 각자 사전 속의 단어를 선택해서 자신의 생각을 확장해보기로 했는데, 필자가 선택한 단어는 ‘광기’였다. 베르베르는 광기에 대해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미쳐가고 있다. 무엇에 미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서로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고 적고 있다.

 주남저수지에 도착하니, 기대와 달리 연꽃은 그 잎만 푸르게 키우고 있을 뿐 꽃이 필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저수지 주변의 논들은 모내기를 마친 상태였지만, 몇몇 논에는 하늘을 담은 물이 팽팽하게 담겨져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기가 나오자 독서모임의 토론은 단번에 부부간의 이해부족으로 옮아갔다. 남편이 ‘일에 미쳐’, ‘운동에 미쳐’, ‘낚시에 미쳐’, ‘미치겠다!’고 눈물짓는 이가 있었다. 남편의 껍데기와 살고 있을 뿐 내 사랑은 이미 눈을 감아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광기의 절대적인 면은 무엇일까? 프랑스의 화가 장 뒤뷔페는 “광기를 품지 않은 예술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이다. 예술가들은 미치면 미칠수록 목표에 더 도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광기의 상대적인 면은 그 광기를 주변에서 경험하게 될 때이다. 예술가를 포함해 운동 또는 낚시에 빠진 당사자는 행복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미쳐버릴 만큼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TV프로그램에도 무엇인가에 빠진 자의 곁에서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진을 찍느라고 부산한 시간을 보낸 후 한숨을 돌리는 필자에게 남편이 대답을 해왔다.

 “책을 쓰고 싶어. 그래서 관련 자료를 발견하고 그것을 정리할 때 행복해.”

 책? 그렇다. 남편은 은퇴 후 시간만 나면 컴퓨터에 매달려 글을 쓴다. 시간이 많으니 저렇게 시간을 죽이는구나 생각했는데, 책 쓰는 일이 남편 자신에게는 일종의 광기였고 기쁨이었던 것이다. 아, 세상에 책은 넘치고 넘치니 쓸데없는 책 만들어 쓰레기를 더하지 말라고 무심코 던졌던 말이 떠올라, 마음에 걸렸다.

 베르베르는 광기는 각자의 머릿속에 숨어 있는 사나운 사자이지만, 길들여 마차에 매달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순치된 사자는 어떤 선생보다 우리 삶을 훨씬 높이 끌어 올릴 수 있다고 했다.

 휴일 아침, 자신의 글 쓰는 기쁨을 포기한 채 아내의 기사 노릇을 해서 이곳까지 와 주었고, 어설픈 사진을 찍어도 감탄을 해주며 새로운 취미에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남편의 배려에 감사한다. 다음 휴일에는 남편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리라. 남편이 지금까지 적은 원고를 찬찬히 읽고, 생각을 나누고, 도움이 된다면 교정 작업에도 함께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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