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공신’ 28회나 책봉했다니
‘조선의 공신’ 28회나 책봉했다니
  • 송종복
  • 승인 2016.06.0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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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공신(功臣)이란 주로 개국이나 반정, 반란, 역모 등에 진압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려주는 칭호이다. 이러고 보니 왕의 선정이나 악정이나 간에 무조건 왕의 편에 들고, 이로 인해 부역, 조세, 징역, 세금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항거하는 자를 무조건 처형하면 공신이 된다. 예를 들어 홍길동, 임꺽정, 전봉준 등은 힘없는 백성의 편에 들었다고 역적(逆賊)으로 평가해 왔다. 이같이 국왕의 실정(失政)에도 무조건 옹호한 자를 공신으로 책봉하니, 공신은 반드시 역사의 승자라고만 볼 수 있을까.

 조선 500년을 통틀어 공신을 28회나 책봉했다. 이에는 반정, 반란, 역모 등 혼란기에 많이 책봉됐다.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서민들의 죽음은 아량이 없고 양반층은 대부분 살아난다. 이에 조정에서는 공신이라는 특권을 내린다. 이때 받은 공신은 가문의 명예와 영광은 물론이요, 그 외 노비, 토지, 감형, 자손까지 세습권이 주어진다. 이들은 요직을 장악하고 왕실과의 혼인으로 조선사회의 특권을 누려왔다. 이같이 자손까지 특권을 받기 위해 사소한 사건도 역모로 몰아넣어 공신이 되려는 자가 많았으니, 이에 양반들은 공신을 탐낼 수밖에 없으니 정쟁이 많았던 것이다.

 그 예로 시호는 숙종이지만, 정식 명칭인 ‘숙종현의광륜예성영렬유모영운홍인준덕배천합도계휴독경정중협극신의대훈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裕謨永運洪仁峻德配天合道啓休篤慶正中極神毅大勳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은 서인과 남인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책봉과 삭제가 반복됐고, 경종 때에는 목호룡 1명만 공신으로 녹훈됐지만, 영조가 즉위하자 그도 역모혐의로 처형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조선은 28차례나 책봉된 공신 중 6차례나 삭제되기도 했는데, 이런 행위는 집권붕당(당파)이나, 왕의 입장이 바뀌는 경우에는 더욱 많았다.

 조선의 공신 중에 종묘배향 공신은 왕과 함께 종묘에 모신 자로 황희, 송시열, 김상헌 등 92명이며, 문묘배향 공신은 성균관과 향교의 공자와 함께 모신 자는 설총, 최치원, 정몽주 등 18명이다. 이 두 종류의 공신은 왕도정치를 하는 조선사회의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외에도 국가에 공이 있어, 영원히 받드는 불천위(不遷位) 제사도 있다. 이 같은 풍습은 자손대대로 세습되는 양반들의 특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공신의 종류는 태조의 개국공신, 정종의 정사공신, 태종의 좌명공신, 태종의 좌명공신, 단종의 정난공신, 세조의 좌익공신, 세조의 적개공신, 예종의 익대공신, 성종의 좌리공신, 중종의 정국공신과 정난공신, 명종의 위사공신, 선조의 광국공신과 평난공신, 호성공신, 선무공신, 청난공신, 인조의 정사공신, 광해군의 위성공신, 익사공신, 정운공신, 형난공신, 인조의 진무공신, 소무공신, 영사공신, 영국공신, 경종의 부사공신, 영조의 분무공신 등이 있다.

 역사기록은 알쏭달쏭하며 흥미진진하다. 역사를 기술할 때 오직 승자의 기록뿐이니 말이다. 불교를 공인하려다 죽은 박이차돈(朴異次頓), 한글창제를 반대한 최만리,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사육신, 왜놈은 쥐새끼 같으니 국방이 필요 없다고 한 김성일 등의 바른 역사는 없고, 오직 승자(공신)의 역사만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공신과 충신은 다르다. 이는 왕조시대-북한-의 공신이지 요즘 민주주의에 공신이라고 여기면 색안경을 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의 공신이란 누구를 위하는 벼슬인지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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