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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화(和)정신
일본의 화(和)정신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05.25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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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문화ㆍ체육부장
 얼마 전 일본여행에서 출발부터 도착까지 전 일정에 통역을 담당한 배민금 가이드는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맛깔스럽게 설명했다. 일본인의 특성을 설명하다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말을 한 마디로 한다면 화(和)라고 했다. 한자를 풀이해 보아도 벼 화(禾)에, 입 구(口)가 붙은 단어인 ‘화(和)라는 글자는 밥(禾)을 같이 나눠 먹는다(口)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정감이 가는 말이다.

 일본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화’는 자주 거론이 된다. 사실 ‘화’(일본식 발음으로는 ‘와’)는 ‘주위를 배려하고 사이좋게 지낸다’는 뜻으로 일본은 이러한 ‘와 문화’를 건국이념이자 국민성의 토대라며 자랑해왔다.

 이화위귀(以和爲貴) 는 일본의 전통적인 국가 이념이고 국가 정책의 기본방침이다. 일본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존경하는 고대의 정치가, 성덕태자(聖德太子,574~622)가 604년에 제정한 제17조 헌법(신하들에게 나눠주고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다.)에 보면 제1조에 ‘以和爲貴’, 즉 ‘평화를 귀하게 여길지어다’, ‘화목함을 귀하게 여겨라’는 구절이 있다.

 성덕태자는 백제계의 혈통을 받은 황족으로서 국내정치뿐만 아니라 중국 수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일본의 위신을 세우고, 선진문화를 도입하는 등 뛰어난 외교적 감각의 소유자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당시 극심했던 호족 간의 대립을 불식하고 복잡한 국제적 관계 속에서 국가를 안정되게 운영하기 위해 화(和)의 정신을 강조하고, 그것을 헌법 즉 국정 근간의 으뜸 덕목으로 명시하고자 했다.

 일본은 1192년부터 무사들의 권력을 상징하는 행정기관인 막부를 설립하면서 메이지유신을 단행한 1868년까지 약 700년간을 사무라이 정권이 통치하게 된다. 수차례 왕정복고를 위한 개혁을 단행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게 돼 왕권약화로 인한 명분뿐인 존재로 왕조가 이어지게 된다. 무사들의 권력다툼에서도 정통성을 부정하지 않으려 나라의 중심은 왕이라는 것을 실천하며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의 일본인에게 있어서 천왕은 종교이며 뿌리이기도 하다. 왕을 살아있는 신(神)으로 신격화해 신도(神道)라는 또 다른 종교를 탄생시키게 된다. 나라의 중심인물만을 신봉하고 따르는 일본인들의 근성은 지도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지켜야 하는 상명하복을 강조한다.

 일본인들의 근면, 성실, 검소, 청결, 신용의 생활방식이 화(和)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화합해 평화롭게 지내자는 의미로 통하는 생활철학이다. 섬나라에서 전쟁으로 인한 퇴각은 바다밖에 없어 서로가 파멸임을 잘 알기에 특히 화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타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서로에게 화를 도모하고자 함이다.

 이는 서로가 협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사이좋게 협의하면 모든 일은 도리에 맞게 반드시 성공한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모두가 사이좋게 다투지 말고 협력하라’는 매우 단순명쾌한 논리이다. 이 정신은 일본의 기업들이 회사의 사훈을 정할 때 매우 즐겨 도입하는 정서이고, 일본사회의 대부분의 조직에 있어서 거의 암묵적으로 합의된 정서라고 해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인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기업 파나소닉의 창업주로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던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 幸之助)는 화의 정신을 잊어버리면 회사가 도산할 거라고까지 단언했다고 한다.

 화(和)에 어긋나거나 화를 해치는 일련의 행동들을 일본인들은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다. 화의 논리는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원리다. 이를 해치는 행위나 사람은 그 과정에 있어서의 정당성이나 선악에 관계없이 구성원으로부터 경원시되고 배척되는 것이 일본사회의 상식이다.

 화(和)정신이 생활화돼 일본인들의 음식을 화식(和食)이라 표현하고 전통의상인 키모노도 화복(和服)이라 하며, 다다미를 깐 일본식 방도 화실(和室)이라 표현한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일본식 과자를 화과자(和菓子)라 하며 재래식 전통 종이도 화지(和紙)라 한다. 일본 재래종 소를 화우(和牛)라 해 최고등급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화풍(和風)이란 말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일본풍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화(和)는 곧 일본의 또 다른 이미지인 것이다.

 이렇듯 화(和)를 강조해 타인에게 신세지고 폐를 끼치는 행동을 수치로 여겨 내적으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며 타인으로부터의 경계를 받지 않으려는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다. 근면, 성실, 신용이 지켜지지 않으면 결국 무리에게 미움을 받아 화합하지 못하고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내면을 억제하고 살다보니 자연스레 개인주의가 팽배해 다소 폐쇄적인 면도 보이는 듯하다.

 섬나라에서 전쟁으로 인한 퇴각은 바다밖에 없어 서로가 파멸임을 잘 알기에 특히 화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타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서로에게 화(和)를 도모하고자 함이다.

 2015년 아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에서 열린 제23회 보이스카우트 세계잼버리의 슬로건도 ‘와’(和)였다. 간절히 평화를 희구하는 마음을 나라와 민족의 핵심가치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일본인의 정신이 일본 정치인들도 예외가 아니길 바라는 화(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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