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지만 행정지도를 통한 규제는 법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기능을 해 필요할 때가 많다. 사회현상을 제때 반영할 수 없는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생겨나는 불합리와 폐단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담당 공무원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행정지도가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어떤 경우는 법에 문제가 없다며 쉽게 허가를 내주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이런저런 이유로 행정지도 과정에서 민원인에게 지나친 요구나 부담을 지울 경우가 많다. 허가과정에서 온갖 외압이 들어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올곧게 가져가기에는 적잖은 부담이 된다. 부조리 싹은 이런 데서 자라난다. 사실 어떤 처분이 올바른 처분인지도 헷갈릴 때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모든 경우에 대비한 메뉴얼을 작성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고무줄 잣대가 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민원인이 덜 억울하다. 행정의 신뢰도 그만큼 높아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장치는 없다. 각종 위원회가 있지만 이런 민원을 거르는 사전장치라기보다 사후 요식절차에 가깝다. 행정지도를 통해 사실상 결론이 난 민원을 형식적으로 처리하는 데 그친다.
이런 문제점은 숱하게 제기됐음에도 한 번도 제대로 제도에 반영된 적이 없다. 칼을 쥔 행정기관에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라고 해서야 될 일이 아님에도 행정기관에게 이런 숙제를 맡겼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관료집단의 사보타지로 힘이 부치는 것이 규제개혁이다.
안상수 창원시장의 정책토론회는 이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안 시장은 취임 후 중요현안이나 정책적 판단이 필요할 경우 매번 정책토론회를 열어 집단토론에 부친다. 지자체에서 보기 드문 예다. 그렇지만 공무원만 참여하는 한계가 있다.
보다 전향적 개혁이 이뤄지려면 법에 저촉은 되지 않지만 허가가 곤란할 경우 민간전문가와 공무원, 민원인이 참여하는 사전 조정위원회 같은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 개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맡길 것이 아니라 집단지성의 판단을 맡길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억울한 민원인도 없애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높이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있다면 이빨이 빠지게 되는 관료집단의 규제의 칼이 있을 뿐이다. 설치를 금하는 명확한 법 규정이 없다면 조례로서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