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스승의 날
  • 김은아
  • 승인 2016.05.1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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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아 김해여성복지회관 관장
 사무실로 들어선 할머니의 손에 빨간 장미 한 송이가 쥐어져 있다. 조금의 머뭇거림을 뒤로 하고 꽃을 내밀며 “선상님, 고맙심미더. 줄끼 이거 밖에 없네”하신다. 근 10년째 회관에서 한글을 배우고 계시는 여든 되신 한글학교 할머니 학생이다. 할머니 집 앞마당에 있던 덩굴장미의 꽃과 잎은 무명실로 묶이고 은박지로 곱게 싸여 나의 가슴에 달렸다.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시더니 다음에는 한 다발 갖다 주시겠다며 함박웃음으로 나를 꼭 안고 토닥여 주신다. 그 웃음에는 안도의 빛이 함께 하였다. 혹시나 초라한 선물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때까지 받은 어떤 스승의 날 선물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스승의 날 선물값을 얼마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들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마음을 물질로 표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김영란법’이라는 잣대에 맞춰 준비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글들 속에는 진정으로 스승을 기리는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 중에는 ‘선물을 안 하자니 찝찝하고 하자니 부담 된다’며 어디까지 챙겨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잘 봐달라는 의미로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선물을 하는 게 좋을까, 안 하는 게 바람직할까. 한다면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할까. 이래저래 고민거리가 더 늘었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번 스승의 날이 주말이라 다행이라는 표현까지 한다.

 어떤 학부모는 선생님이 자필로 쓴 편지만 받겠다고 했다며 그 말이 진정일까 의심하기도 했다. 진심을 다한 감사의 편지 한 장이 더 값진 선물일 수 있는데 그것이 물질에 밀려나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가장 소중한 추억이며 선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말레이시아 대학에서 스승의 날에 학생들에게 받은 앨범이다. 한 학기 동안 함께 수업하며 찍었던 사진들과 학생들이 남긴 감사의 글이 내 가슴 속에도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흔들리는 교권 탓에 스승의 날은 언제부턴가 달력 속에만 남아 있는 날이 되었다. 제자 없이 ‘교사끼리 격려하는 날’이란 냉소가 나올 정도다. 학생은 더 이상 교사를 신뢰하지 않고 교사는 학생들을 지도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은 이제 전혀 새롭지 않은 우리 사회의 한 풍조로 고착화했다.

 교권이 추락한 상황에서 하루 정도 스승의 의미를 새겨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을 옛날얘기로 치부할 게 아니라 현세대에도 그 본뜻이 통할 수 있도록 교권 회복과 학생ㆍ학부모의 인식 제고에 더 힘쓸 때이다.

 한글 수업을 마친 시간,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이 봉투 하나를 내민다. “성원학교 학생 일동”이라고 적힌 봉투에는 할머니들의 성의가 담겨 있다. 월요일에 갈 할머니들 봄나들이 준비를 하고 있던 모습을 보시며 내내 ‘고생한다, 수고한다’ 하시더니 기어코 스무 명의 어르신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으셨던 것 같다. ‘감사하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시며 ‘우리 때문에 애쓰고 고생하는데 큰 도움 되지 못해 미안하다’며 총총히 자리를 떠신다.

 일요일, 하루 종일 일기예보에 확인하며 내일 할머니들과 함께 갈 봄나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아마도 올 봄나들이도 행복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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