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곳마다 꽃이 피어서
떨어지는 곳마다 꽃이 피어서
  • 김금옥
  • 승인 2016.05.1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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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김해삼계중학교 교장
 “나는 네 사랑/너는 내 사랑/두 사랑 사이 칼로 썩 베면/고우나 고운 핏덩이가/줄줄줄 흘러 내려오리니/한 주먹 덥석 그 피를 쥐어/한나라 땅에 고루 뿌리니/떨어지는 곳마다 꽃이 피어서/봄맞이 하리.”

 이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시 ‘한나라 생각’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독립운동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시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영혼의 결기에서 어느 시인의 솜씨 못지않은 운율과 서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채호 선생의 기념관과 사당은 청주 고드미 마을에 있었다. 단재 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서 신채호 선생은 전신사진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단재 선생은 평생을 일제에 대항해 싸우고 애국계몽 운동을 하신 분으로 일경에게 체포돼 뤼순형무소에 수감돼 모진 고문을 받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감옥 안이 너무 추워서 솜옷 한 벌 넣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가족들은 끝내 그것을 넣어주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시신을 조국으로 모셔왔으나 오랜 망명생활로 선생의 국적이 사라진 뒤였다. 결국, 매장허가를 얻지 못해 남몰래 장사를 지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묘소 앞에서 엎드려 절을 올리니 뻐꾸기도 뚝! 하고 노래를 멈추었다. 흙을 단단히 움켜쥔 이름 모를 풀들이 바람에 흔들릴 뿐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 없어 골짜기에는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단재 기념관에서 들은 우당 이회영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선조인 이항복부터 8대에 걸쳐 판서를 배출한 조선의 명문가 후손이었던 선생의 여섯 형제와 일가족은 명예와 안락한 삶을 내던지고 전 재산을 팔아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해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들의 재산이었던 명동 일대의 토지는 현재 시가로 6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을 후원한 그와 가족들의 삶은 하루 한 끼가 힘든 가난의 연속이었고 여섯 중 둘째인 이석영은 중국 상하이 빈민가에서 영양실조로 굶어 죽었다.

 책에서 배웠던 독립 운동가의 모습은 왜 그렇게 멀리 느껴지고 담담했을까. 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 사학자이며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주필로 활동한 언론인이며,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해 활동한 독립 운동가였다. 이것이 필자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내용이다. 그런데 현장에 와서 그의 삶과 활동을 함께 보고 들으니, 감사와 참담함이 교차하고 가슴이 얼얼해지면서 필자의 삶이 돌아다 보였다. 온갖 방한복에 방한화로 무장하고도 춥다고 엄살 피우던 겨울이 부끄러웠고, 이 풍요롭고 평안한 세월이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이라 생각하니 솜옷 한 벌 해 드리지 못한 세월이 안타까워 가슴이 메었다.

 그곳에서, 우리도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울 때가 됐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유럽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학생들에게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를 가르친다고 들었다. 우리는 역사의 현장을 등한시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서만 역사공부를 해 온 편이다. 게다가 역사공부의 형태가 연대순, 사건순, 인물순 등으로 줄을 세우기에 급급했다. 시험점수를 위한 암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지나간 역사의 경험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우리의 윤택하고 편안한 삶이 과거 선조들의 희생 위에 가능했듯이, 미래를 살 후손들을 위해 우리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을 진작 알았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공부를 제대로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역사를 읽게 하되 어릴 때부터 읽게 할 것이며, 역사를 배우게 하되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게 하라.”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질곡의 세월을 건너는 그분들을 만나 뜨거운 차 한 잔 올리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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