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00:02 (토)
성공하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
성공하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
  • 권우상
  • 승인 2016.04.21 22: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처음 상면하는 자리에서 “하루에 대궐을 드나드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는가?”하고 묻자 한명회는 “두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수양대군이 “어째서 두 사람이냐?”하고 묻자 “나으리에게 득이 되는 사람과 해가 되는 사람 두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 당시 대궐에는 하루에 2천~3천명 정도의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이 문답으로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가신으로 삼았고 한명회는 계유정난의 주도적인 인물로 수양대군이 왕위(세조)에 오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 후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신임을 얻어 영의정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과거시험에 8번이나 낙방하고 권근의 소개로 수양대군이 천거해 경덕궁 궁지기에 들어간 한명회는 38살의 나이에 영의정에 올라 예종 성종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으니 대단히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출중한 영웅, 호걸이라도 시운을 잘 만나지 못하면 큰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남이 장군은 이시애 난을 평정한 공로로 왕(세조)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그는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남이가 이시애 난을 평정하고 두만강을 바라보면서 지은 시가 문제가 된 것이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모두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에 먹여서 없애리라, 남자 나이 20세가 돼 나라가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를 것인가(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唯稱大丈夫).”

 여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남아이십말평국(男兒二十末平國)’의 말(末)자인데 남미가 미(未)로 쓴 것을 유자광이 말(末)로 고쳐놓고 “남자 나이 20세가 돼 나라가 평정한 뒤에는 누구를 대장부라고 부를 것인가”라고 해석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 대장부를 임금으로 해석하면 나라가 평온한 뒤에는 누구를 임금으로 부를 것인가로 해석돼 반란의 음모가 있다고 한 것이다. 이 문제로 남이는 반역을 도모한 죄로 참형됐다. 남이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유자광이 강력히 반박하자 남이는 누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참형 됐다. 동학난을 일으킨 전봉준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대 총선에서 후보자들의 당선과 낙선이 엇갈려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타고난 길흉화복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인물이 똑똑하고 출중해도 실패하고, 별로 인품이 뛰어나지 못한데도 성공하는 것을 보면 시운을 잘 만나야 빛을 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은 누구나 길운일 때는 나에게 득이 되는 사람을 만나 좋은 일이 생기지만 흉운일 때는 해가 되는 사람을 만나 어떤 방법이든 피해를 본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사업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자금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어떤 사람은 성공을 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를 할까?’하는 점이다. 사업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출발은 같았는데 결과는 왜 차이가 나는 것일까. 실패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를 거론한다. 즉 사업 실패의 이유로 시기가 좋지 않아서, 돈이 모자라서, 업종 선택을 잘못해서… 여러 가지가 열거된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각자 먹고살 수 있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왜 실패할까? 그것은 자신의 운로를 모르고 욕망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타고날 때부터 운로가 다른데 남이 성공하니 나도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로를 알고 처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