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3:53 (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다면…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6.04.10 22: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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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 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지./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메마른 구근으로 작은 목숨을 키워 주었지’…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 시인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유럽의 서구문명과 인간사회의 궁핍함을 ‘잔인한 4월’에 빗대어 표현했다. 4월을 ‘저주받은 축복’으로 묘사함으로써 극적인 역설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의 4월도 이와 다를 바 없다. 1947년 4월, 대량학살과 인권유린이 자행된 그 해 4월에도 제주는 벚꽃이 흐드러졌고, 라일락은 속절없이 향기를 품었다.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제주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3만여 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잔인했다. 또 1960년 4ㆍ19혁명이 일어났다. 이승만 정권의 지나친 정권욕과 독재, 부패 정치에 항거한 4ㆍ19 학생 의거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는 기폭제가 됐다. 실종자를 포함 총 304명의 희생자를 낸 2014년 4월의 세월호 사고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커다란 아픔의 낙인을 남겼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잔인한 4월에 치러지는 20대 총선, ‘공천이란 게 으레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는커녕 혼탁양상의 심화로 정치혐오만 더했을 뿐이다. 여야 각 정당이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간 진흙탕 싸움에다 패권다툼만 기억날 뿐이다. 선거운동은 막말과 색깔론, 지역주의 등 온갖 구태로 얼룩지고 있다.

 때문에 집권당의 공천파동과 야권분열로 인해 국민의 분노는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그 당시, 대통령직선제 실행으로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점쳐진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일어난 상황과 판박이고 회자됐던 ‘선거혁명’이라는 슬로건의 변종에 불과할 뿐이어서 투표를 외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보통 아니다. 그 때, 거대 양당제에 맞서려는 제3당 세력이 스스로 제3세력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3당의 등장과 소멸을 지켜봤기에 지난 30년 전과 다를 게 없다면 기우일까.

 하지만 이번 총선이 예전과 다른 것은 텃밭의 균열에 있다. 이러한 지형변화는 원칙을 무시한 새누리당의 공천파문과 명분 없는 야권분열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공천과정의 ‘친박 패권주의’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고 공천의 칼을 휘두른 만큼 큰 책임도 뒤따를 것이다. 또 여당의 그늘이 워낙 커 눈에 덜 띄었을 뿐 야당의 사정도 다를 게 없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비례대표 공천 논란이 끊이질 않고 국민의당은 낙천한 후보가 도끼까지 들고 나섰지 않았는가.

 패권다툼의 결과겠지만 야권텃밭인 호남에서는 야권 후보들이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또 새누리당 텃밭인 PK 일부 지역에서는 야권이 선전 중이고 야권 불모지나 다를 바 없는 대구의 변화가 주목받고 있다. 정치적 비전 제시는커녕 ‘진박(眞朴)’이 훈장(?)인 양, 보복 공천에다 진박 낙하산, 경선배제에다 박 대통령 ‘존영(尊影)’ 반환요구에 등 돌린 민심이 표출하고 있다.

 화들짝 놀란 ‘무릎 꿇기 쇼’를 두고 납득할 만한 설명과 진솔한 사과는커녕, 유권자를 얕잡아 본 것과 다를 바 없이 아직도 오만과 착각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텃밭민심을 무시한 오만함에 대한 유권자의 반격이 만만하지 않은 것이란 시각은 당초 투표기피를 예견한 것과는 달리, 높은 사전투표율에 있다. 그렇다고 야권도 나을 게 없다. 호남에서 더민주 후보들은 공천 컷오프를 두려워해 탈당한 국민의당 후보들에게 밀리고 있다. 당내 패권주의가 가져온 참담한 결과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이 텃밭 유권자나 국민을 무시한 공천 파행과 원하지 않은 야권분열의 결과라는 점이 안타깝다. 또 4ㆍ13 총선에 출마한 944인 가운데 전과기록이 있는 후보자는 383명으로, 41%에 이른다. 과거 선거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전과기록뿐 아니라 다른 기준에서도 예전보다 더 나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기권하는 것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정치 무관심과 정치 불참으로 연결되면 나쁜 정치인이 당선된다. 때문에 정치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큰 20대 총선이지만 유권자의 선택은 언제나 현명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이는 애프터서비스도 반품도 안 되기에 애꿎은 손가락 탓만 한 채 다음 선거를 기다려야 하고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각 정당의 공약과 나쁜 공약을 가려내는 것도 유권자의 몫이다.

 기독교 구약 경전 ‘전도서’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닦이란 걸 절감한다. 그래도 정치를 심판할 사람은 국민밖에 없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차선도 없으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그 길이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공천파문과 야권분열을 두고 누가 심판받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지만, 1987년 민주화 후 30년인데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그때와 마찬가지여서야 쓰겠는가. D-2,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으로 정치가 국민을 우롱하고 비극을 잉태하는 4월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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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 2016-04-14 13:50:36
전도서의 '하늘 아래'는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을 꼬옥 읽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