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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맹자맘’들이 아프다
한반도 ‘맹자맘’들이 아프다
  • 김혜란
  • 승인 2016.03.30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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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2011년 중국의 일부 지방정부에서 ‘맹모삼천지교’의 내용을 교육과정에서 삭제하도록 지시한 뉴스가 소개된 적 있다. 내용에 따르면 ‘맹모삼천지교’는 주변 환경이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고 사람을 가려 사귀어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환경에 적응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 맹자 엄마 이야기가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중국도 얼마나 ‘맹모삼천지교’를 실천(?)에 옮기는 학부모가 많길래 사회현상을 정부까지 나서서 막나 싶었다.

 ‘맹자맘’의 교훈은 중국뿐 아니라 2300여 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에서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새 학기를 맞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신입생들의 ‘맹자맘’은 자녀를 위한 고급(?)정보를 어떻게든 많이 얻으려고 애를 쓴다. 어느 유치원이 좋고 어느 학원이 좋은가는 이미 기본으로 정보 축에도 끼지 않는다. 학교 담임선생님에 대한 갖가지 정보부터 수집에 돌입한다. 나아가서 교무주임, 교장 선생님에 대한 정보도 확보하면 유리하다. 반 친구 부모들의 경제사회수준 파악도 한다. 다른 아이들과 과외 그룹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 신문에 ‘인맥 쌓기, 조리원에서 시작?’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서울 강남의 산후조리원과 어린이집 등이 새로운 인맥 형성공간으로 인기를 끌어서 유명한 산후조리원은 반년 뒤까지 예약이 꽉 찬 상태라고 전했다. 지금은 그런 조리원의 대기순번이 더 길어졌는지 모르겠다. 자녀 인맥을 챙기는 시점이 학교 입학에서 산후조리원으로 앞당겨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야 일부 계층이겠지만 일반 학부모들도 먼 산 보듯 하고 있지는 않다.

 하버드대학의 데이비드 맥클리랜드 교수는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성격과 기질을 연구해 보니, 한 개인이 교류하기로 선택한 ‘준거집단’이 장래의 성공이나 실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결국 비지니스 할 때나 쓰인다고 생각했던 인맥이 자녀교육에도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늦게 결혼한 후배가 지금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호소해 왔다. 아이라고는 하나인데 어울릴 만한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하니 힘들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교육, 경제 수준이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렸으면 좋을 것 같아서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유치원 학부모 모임은 물론, 지난겨울부터는 안 나가던 동네 모임, 스포츠센터, 문화센터, 봉사 모임까지 기웃거렸더니 몸과 마음이 벌써 피폐해졌다. 거기다가 요즘은 디지털 인맥도 중요한 것 같아서 인터넷을 통한 지역 모임, 동호회 모임도 관리하려는데 힘에 부친다고 한다.

 교육 관련 박사과정을 마친 이 후배는 결국 국내 박사라는 이유로 몇 번 고배를 마신 뒤 결혼으로 골인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도 배운 것을 바로 아이에게 적용시키길래 나쁘지는 않게 지켜봤다. 그런데 막상 타인과의 관계망 속에서 아이를 위해 인맥까지 만들어 보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솔직히 이 후배는 교수 타입이다.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만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고 사교적으로 인맥을 형성하는 일은 맞지 않는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선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인맥이 아이의 인맥까지 결정하리라는 믿음도 절대적인 것은 아닐 것 같다. 하물며 엄마가 자녀를 위해 관계망을 구축하는 일이 재미있어도 사회적인 문제가 될까 봐 걱정스러운데, 오히려 스트레스라면 당장 궤도수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데.

 뒤늦게 정부 차원에서 ‘부모교육’을 교육단계별로 할 모양이다. 지켜봐야겠지만 겉핥기는 아니었으면 한다. 하려면 제대로 하자. 결혼교육부터 해야 한다. 그다음이 부모교육이다.

 프랑스의 한 엄마가 한 말이 생각한다. 애 키울 때 너무 심각하면 우울증 걸린다고…. 요즘 사람들 다 바쁘다. 특히 부모가 되면 더 시간이 없다. 후배처럼 안 하던 새로운 인맥형성까지 하려니 후달린다. 그런 엄마들의 가장 훌륭한 덕목은 유머라는데 동감한다. 저 아이가 내게서 나온 분신이고 나 없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지금 내가 준비해 줘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만 하면 정말 우울해진다. 어떤 때는 남의 아이 보듯 자기 아이를 보기도 해야 하고, 아이가 이쁜 짓을 하면 다른 집 아이랑 비교하지 말고 좀 극대화시켜서 내게 숨겨진 재능을 발현시키는 천재가 아닐까 바보 같은 생각도 해 보면서, 유쾌하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엄마인 자신을 위해, 아이를 위해 백번 낫다. 그래도 안 되면 빨리 방향 바꿔야 한다는 사실도 꼭 명심하자. 엄마의 스트레스, 아이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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