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37 (금)
유성룡을 대망한다
유성룡을 대망한다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6.03.27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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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야당이 한 것이라고는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국정을 마비시킨 것 외에는 달리 한 게 없다. 주요 쟁점 법안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다른 법률안까지 볼모로 불임국회를 만들었고 툭하면 거리투쟁을 벌여 식물국회를 만들었다. 야당의 머릿속에는 국민의 힘을 결집시켜 나라의 운명을 개척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대표가 말하는 것처럼 철 지난 운동권논리에서 아직도 헤매는 모습이다.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의 거친 목소리에 움츠려 제 목소리를 내 본 적이 없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힌 뒤 청와대 눈치 보는데 급급만 모습만 보였다. 김무성 대표만이 간간이 저항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는 하나 30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국정 난맥상에 가장 큰 책임은 불통과 독선으로 일관한 청와대에 있다. 정권 출범부터 야당이 발목을 잡아 일 한번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청와대의 분통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분통만 터뜨렸지 제대로 된 소통 노력을 본 기억이 없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난 게 한 번뿐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도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다가 끝났다. 반대를 인내심 있게 설득하고 비전을 공유하도록 하는 게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책무다. 정치란 선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데 도와주기는커녕 발목만 잡고 자기 정치만 하려 든다는 불만과 배신감은 국정운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독이 된다. 심한 것이 문제이긴 하나 야당이 국정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정치인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고 자기 정치만 한다는 것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때론 못난 사람도 안고 가야 하는 게 인간사의 일이다. 선의는 과정의 충실함이 뒷받침될 때 빛을 보게 마련이다.

 이번 20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나타난 청와대와 여야의 행태를 보면 이런 과오를 저지른 공동정범 간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청와대는 국정을 뒷받침할 자기사람을 심기 위해 청부업자를 고용해 칼춤을 추게 했다. 여당은 김무성 대표만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결국은 자기 지분 챙기는 정도에서 그쳤다. 막판 옥새 파동도 추락한 이미지 만회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과오의 핵심에 있는 문재인 전 대표는 빠지고 김종인이라는 바지사장을 내세워 야당의 얼굴에 분칠을 했다.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환골탈태는커녕 역시 친노패권주의는 완강하기만 한 것을 확인시켜줬다. 업소 폐쇄 위기가 닥치자 바지사장을 내세워 대체 업소를 차려 간판을 바꿨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불법영영장이 연상된다. 청와대와 여당은 서로 네가 더 큰 죄를 지었다고 삿대질하는 꼴이고, 야당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이제 개과천선했으니 잘 봐달라고 하는 모습에 다름없다.

 기가 막힌 것이 총선 이슈의 실종이다. 예전 같으면 정권심판론이랄지 국정안정론이 총선 이슈로 나왔을 텐데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긴 죄다 공동정범인데 누가 누구를 심판하자는 말을 할 염치가 없었을 것이다. 국정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쟁점법안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물을 법한데도 그것도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 후보들이 대한민국을 바로 잡겠다고는 하지만 왠지 공허하게만 들린다. 정당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을 후보 개인이 하겠다니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국민은 누구를 찍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지지는커녕 모두 퇴장시키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정치는 최선보다는 차선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도 찍고 싶지 않다. 덜 나쁜 쪽을 찍으려 해도 판단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서울 공격 연습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느라 날을 지새운다. 유성룡 같은 인물은 어디에 있나. 있다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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