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3:07 (토)
서예 예찬
서예 예찬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03.23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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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편집위원
 신정과 구정 그리고 3월을 보내면서 나이를 몇 번이나 먹었다는 느낌이 밀려온다. 살아온 날들이 자연스러웠던 삶이라기보다는 너무 많은 것을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 같다. 앞으로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건강 100세 시대를 위해 규칙적인 운동이나 올바른 식습관을 생활화한다. 그동안 못했던 취미생활을 한다. 세계일주 여행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을 자주 여행한다.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만난다. 시간이 갈수록 하고 싶은 일들이 쌓여만 간다. 욕심일까.

 그런 바람 중에 하나가 서예(書藝)다. 창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내에 붓글씨 동호회가 있어서 가입을 한 적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30분간 연습을 했는데 현장근무라서 서예교실이 있는 본관까지 가고 오는 시간이 20여 분 걸려 정작 배우는 시간은 10분도 제대로 안 됐다. 아쉬웠지만 결국 얼마 못 다니고 그만두었다. 늘 마음속에 꼭 배우고 싶었는데 다행히 최근 일주일에 한 번 진주 가호동 주민자치센터에 개설된 서예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서예는 3천 년간 이어 온 동양 예술로 동양의 독특한 조형미를 표현하는 예술 활동이다. 서예는 문자를 예쁘게 쓰는 것만이 아니라 문자의 모양과 뜻을 이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서예작품에는 글씨를 쓴 사람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또한 서예는 거듭되는 연습을 통해 기술적 측면을 넘어 정신수양의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어 ‘서도’라고도 한다.

 미성 박춘기 선생님의 자제로 진주서도학원을 경영하시면서 가호동 주민자치센터 서예반을 지도하시는 청산 박상문 원장과의 인연도 행운이었다. 박상문 원장은 56년째 서예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진주필우회 지도고문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서예는 문자를 표현한 독특한 예술이다. 특히 붓으로 문자를 표현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문자를 기록한다는 서사적 기능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서예는 실용가치뿐 아니라 예술적 행위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글씨 쓰기 행위와 다르며, 문자 디자인과도 구별된다. 모필을 사용하면서 글자 간의 구도와 행간의 구도인 장법을 강구해야 하며, 먹을 다루는 법을 제대로 사용했을 때 비로소 서예라고 할 수 있다.

 당나라의 서예이론가 장회관은 서예를 ‘무성지음, 무형지상(無聲之音, 無形之相)’이라고 했다. 소리 없는 음률이고 형상 없는 모습이란 의미다. 서체의 조형미뿐만 아니라 작가의 성질과 심성, 인품 등의 ‘혼’을 담은 종합예술이 바로 ‘서예’란 의미로 통한다.

 지금까지 서예에 관한 연구는 예술과 미학적 가치에 두고 이뤄져 왔지만 서예의 본질이 수신제가(修身齊家)라는 점을 감안할 때 서예는 곧 자신의 수양이며 치료적 기능을 가져 심리치료에도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서예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한다면 정서안정과 함께 재활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서예가 노인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는 2012년 한양대학교 석사논문(노인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예술치료 프로그램 연구 : 서예활동을 중심으로, 한보람)에서 나왔다.

 논문내용에 따르면 먹을 갈고 내면의 감정을 서예로 표현하는 과정은 뇌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우울증을 예방하는 세로토닌을 증가시킨다. 때문에 먹을 잡는 동안 신체가 이완되면서 안정된 상태가 돼 과거의 불안이나 공포, 노여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약화시키고 스트레스 감소와 자존감 증진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서예라는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교육과 예술이 접목된 프로그램을 통해서 노인 분들이 좀 더 친숙하게 참여할 수 있다. 붓을 잡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손에 와 닿는 힘을 조절하는 것을 통해 정신이 집중돼 노인 분들에게 어느 정도의 재활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고령자들이 서예를 하면 중풍, 뇌졸중, 치매예방에 좋다. 서예가가 글씨를 쓰는 것은 서예가 자신의 마음을 쓰는 것이다. 먹을 갈고 화선지를 접어 한 글자 두 글자 쓰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박상문 선생님은 한 획을 긋더라도 혼신의 열정과 힘을 다해 쓰라고 하신다. 선생님은 같은 글을 두 번 써 주지 않고 연습도 실전처럼 쓰라고 한다.

 먹을 갈면서도 끈기를 기르고 성현들의 글귀를 암송하고 음미한다. 묵향을 맡으면서 붓으로 내 마음을 힐링한다. 서예를 배운다는 것이 단순히 판본체나 정자를 따라 그리거나 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감정이나 나다움의 창의성을 일상의 예술로 승화하는 것이다.

 기계와 컴퓨터에 의한 규격화된 글자들의 단순한 집합보다는 묵과 여백, 흑과 백이 만들어 내는 조화로움을 창의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쓴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중국 남송의 대표적 시인인 육유의 “快日明窓閑試墨, 寒泉古鼎自煎茶”(쾌청한 날 밝은 창가에 한가로이 시묵하고, 차가운 샘물 담은 옛 솥에 스스로 차를 다린다)를 쓰고 있다. 한없이 부족하지만 서예를 사랑하는 분들과 다가 올 작품전 준비를 하고 있다. 배우면 배울수록 오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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