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8:01 (화)
불량식품 제조는 ‘살인’이다
불량식품 제조는 ‘살인’이다
  • 박춘국 기자
  • 승인 2016.03.21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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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국 논설 위원
 1995년 필자는 15일간 호주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발 호주행 비행기에서 밤늦은 시각 멜버른 공항에 내린 필자는 다음 날 아침 호텔 창밖 풍경에 경탄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더 넓은 초원의 골프장 한가운데 자리한 호텔. 이 나라는 듣던 대로 ‘축복의 땅’이구나!

 호주가 ‘축복의 땅’이라 불리는 이유가 ‘지상의 낙원’으로 표현되는 자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행 중에 새록새록 알게 됐다.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하고 인간 중심, 그중에 약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호주의 법’은 인간과 함께 ‘자연과 동물’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었다.

 지난달 2천400만 명을 돌파한 호주의 인구는 필자가 여행할 당시 천만 명을 갓 넘기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혼하게 되면 남자는 전 부인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남자친구를 소개해줘야 하고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내도록 했다. 또 집안일에 소홀한 남편을 위해 아내가 관에 신고하게 되면 주민센터에서 남편의 가사 참여 여부를 감시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법이라는 생각과 함께 법이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의 법이 특별하게 필자에게 다가온 대목은 ‘동물 학대를 사람을 대상으로 한 폭력에 준해 처벌하도록 했고, 나뭇가지를 꺾거나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과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처벌이 매우 엄한점’ 이었다.

 호주법은 ‘어린이가 1번, 여성이 2번, 동물과 식물이 3번, 마지막이 남성’이라 전한 가이드는 “이 나라는 약자를 우선해 제도와 법이 만들어졌다”고 부연했다.

 호주법 가운데 우리와 크게 다른 점은 ‘불량식품 제조와 유통’을 살인죄로 처벌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량식품 제조와 판매’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살인’으로 규정한 것이다. 호주가 불량식품 제조와 판매를 살인죄로 정한 이유를 알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남도가 새학기를 맞아 지난 7일부터 도내에서 생산되는 어린이 기호식품에 대한 특별단속을 벌였다. 어린이들이 손쉽게 사 먹는 과자와 사탕, 젤리류를 생산하는 도내 가공업체 12개 업체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결과, 김해 A 물산 등 4개 업체가 적발됐다.

 이들 업체는 쫀드기ㆍ초콜릿ㆍ젤리ㆍ도넛 등을 만들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하거나 원료수급 관련 서류를 작성하지 않고, 식품표시사항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젤리를 생산하는 양산 B 업체는 지난 2월 유통기한이 지난 포도농축액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어 학교 주변 거래처 4곳에 판매하다가 꼬리를 잡혔다.

 도넛을 생산하는 진주 C 업체는 원재료에 밀ㆍ달걀ㆍ우유 등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 포함돼 있는데도 제품 포장에 주의사항을 표시하지 않았다.

 흉기로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만 살인으로 봐야 할까. 불량 식재료에 대한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한 행위는 의도가 분명한 살인행위다. 정해지지 않은 무고한 생명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죽어가게 만드는 불량식품 제조가 살인보다 가볍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에 불량식품 제조 업체 단속을 지휘한 경남도 안전정책과장은 “부정ㆍ불량식품이 뿌리 뽑힐 때까지 단속과 처분을 강화할 계획이다”고 밝히면서 “피의자를 조사해 검찰로 사건을 송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범죄에 대한 그간의 솜방망이 처벌이 우리와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 왔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이들에게 위협받았고 또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들에게 우리의 생명을 저당 잡혀야 하나.

 우리도 호주와 같이 ‘불량식품 제조와 유통’을 살인죄로 처벌하는 법을 만들 시기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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