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0:39 (금)
팥쥐 엄마의 아이들을 위하여
팥쥐 엄마의 아이들을 위하여
  • 김금옥
  • 승인 2016.03.16 2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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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김해삼계중학교 교장
 늦은 오후, 서울에서 내려오는 KTX를 탔다. 신경 줄을 팽팽하게 잡고 움직여야 하는 번잡한 서울의 거리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차창으로 스며드는 햇살, 한가롭게 흐르는 구름, 그 여유로운 느낌이 좋아 등받이에 몸을 묻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자리에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식사를 제시간에 못한 모양 빵과 우유를 배낭에서 꺼내 막 먹으려다 빵을 자르더니 절반을 필자에게 내밀었다. 감사하지만 먹고 싶지 않다고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러자 그녀는 잠깐 망설이더니 “혹시… 선생님이 아니신가요? 저는 세 살, 네 살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라며 말을 걸어왔다.

 서울에 영어 학습지 교육을 받으러 왔다가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학습지 교사인가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어린 아들에게 00학습지를 시켰더니 한글을 단박에 깨쳤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제는 영어ㆍ중국어ㆍ일본어ㆍ러시아어 등 외국어 교육을 시키려고 하는데 단계가 올라갈수록 학습지 가격이 점점 높아져서 고민이라고 했다. 그녀는 서울에서 교육받았다며 스무 개 정도의 영어 단어가 적힌 공책을 보여주었다. “어릴 때 외국어의 씨앗을 심어주면 자라면서 여러 개의 언어를 동시에 말할 수 있대요. 아이에게 씨앗을 잘 심기 위해서 이 고생이에요.”

 부모가 아이를 위해 무엇을 못하겠는가. 하지만 세 살과 네 살의 아이들을 위해 그 어머니가 선택한 교육방법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었다. 잘하고 계신다는 맞장구를 듣고 싶은 듯 그녀는 계속 조언을 구했다. 필자는 할 수 없이 “벌써 한글을 깨쳤다면 총명한 아이이니, 책과 놀게 하는 습관을 길러주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교육은 인간의 잠재능력을 이끌어 내어 유용한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 우리는 자신이 지닌 잠재능력의 5%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인간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많은 보고서들이 ‘독서’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공부가 즐거워지는 습관, 아침독서’의 저자 남미영 박사는 요즘 우리 사회에는 팥쥐 엄마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식에게 책 읽는 능력은 길러주지 않고 학교로, 과외학원으로 내모는 엄마들이 바로 부러진 호미로 밭을 매게 하고,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다 붓게 하는 팥쥐 엄마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최근에 초등학생 딸을 새벽 4시까지 공부시키는 등 아내의 지나친 교육열 때문에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며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매스컴을 탔다. 법원은 남편의 손을 들어주었고 11살짜리 딸에 대한 양육권은 남편에게 돌아갔다. “경쟁 사회에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은 부모의 의무”라며 아내는 항변했다.

 필자의 학교에서는 매월초 전교생들에게 새로운 책을 손에 들려주고 아침시간 20분을 이용해서 ‘선생님과 함께 책 읽는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아침독서는 하루의 학습을 위한 준비운동에 해당된다. 학생 개개인의 취향과 필요에 따른 책 선택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학생들은 이 시간을 통해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부모님들이 정말 아이들에게 좋은 씨를 심고 싶으면 자녀의 독서 이력을 살펴보고 자녀에게 걸맞은 독서를 위해 함께 서점 나들이를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어떤 책에 관심이 있는지 눈여겨 보시기 바란다. 여기에 더해 부모가 읽을 책을 산다면 아이들은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씨앗은 결국 본체인 부모에게서 익어 떨어져 나와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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