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로 노는 세상을 꿈꾼다
도구로 노는 세상을 꿈꾼다
  • 김혜란
  • 승인 2016.03.16 2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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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이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이세돌과 알파고, 알파고와 이세돌이 벌인 세기의 바둑 경기에서 이세돌이 졌다. 불공정 게임이라거나 이세돌 개인이 졌다거나 구글만 좋은 일 시켰다거나 한다. 다 맞는 말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결국은 인간승리라고 악을 쓰며 말하거나, 감정은 기계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며 애써 인간 스스로를 위안하는 말 속에는 인간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시각이 있다.

 아직도 인간 위주의 생각을 한다. 인간인데 당연하지 않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껏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한 게 제대로 발현된다면 주인이니 크게 당황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다. 알파고는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경기 결과의 반응에 비춰 보건대, 인간들은 여러 가지 삶의 파고를 겪으면서도 자만하고 스스로에게 도취돼 주인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강조하지만, 오만으로 꽉 찬 인간‘님’으로 세상에 군림해서는 답이 없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생명체 중 한 종(種)으로서의 인간은 독특하다. 자연과 다른 생명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영리하고 교활하며 진화도 빠르다. 그러나 거기까지라면 인간은 독특한 생명체가 아니다. AI인 알파고가 바둑이라고 하는 수천 년 된 놀이게임에서 인간 고수를 이겼다고 해서 바로 손들고 항복할 종류의 생명체가 인간은 아니라는 뜻이다.

 알파고의 위력은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서부터 나타난다. 발 빠른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바둑을 배우게 하려고 난리단다. ‘알파고가 대체 어디에 있는 고등학교냐’는 블랙 유머를 넘어서 “바둑을 배우면 이세돌 9단을 넘어 알파고처럼 되지 않을까. 수천 대가 넘는 컴퓨터에서 한꺼번에 나오는 IQ를 갖게 되지 않을까. 그 정도 되면 서울대가 아니라 하버드대, 옥스퍼드대도 갈 수 있을 거야.”

 바둑은 좋은 놀이감이자 고도의 두뇌게임이니 남녀노소 배우면 좋다. 하지만 바둑을 배워서 대학가고 출세하자는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병폐를 그대로 바둑 배우는 동기로 삼아서는 이세돌 증조할아버지가 온다 해도 절대로 제2, 제3의 알파고를 이길 수 없다.

 놀게 해야 한다. 절실하다. 놀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만들어낼 세상은 알파고처럼 논리와 분석과 통계만이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이끌려는 인간은 반드시 알파고에게 진다. 왜? 아직은 알파고의 강점이 논리와 분석과 숫자통계에 있으니까. 제대로 놀면 행복해지고, 놀이를 발전시켜서 연구하고 공부하면 그것 자체도 또 새로운 놀이가 된다. 그러면서 일이 행복해지고 감정도 풍부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알파고가 아직은 정복하지 못한 감정세계는 한동안은 인간의 강점으로 갖고 갈 수 있다. 인간은 그 감정으로 기뻐하고 감탄하고 공감한다. 슬퍼하며 분노도 할 수 있지만 평온도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노는 동물이며 동시에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호이징아는 ‘호모 루덴스’를 통해 놀이가 인간 문화의 일부분이 아니라 문화 자체라고 말했다. 베르그송은 ‘호모 파베르’를 말하며 도구로 노동하는 인간을 강조했다. 그동안 두 개념은 대비된다고 생각해왔지만, 이제부터 열릴 시대는 도구를 가지고 노는 주체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도구를 가지고 놀아서 즐거움을 얻고 동시에 일도 되는 세상 말이다. 지금도 겹쳐지고 있지만 필사적으로 그렇게 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무엇을 가지고 놀 것이냐도 과제인데, 그것이 무엇이든 현대 한국사회처럼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거나 그것을 통해 다른 무엇을 꿈꾸는 일만을 목적으로 두어서는 실패 할 확률이 높다. 혹은 그 도구에 종속될 확률도 높다. 알파고에 진 이세돌을 보고 미래를 겁내는 것은 그런 가치 기준에 머무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도구를 가지고 노는 인간의 인성이나 철학이 가장 중요한 사안일 수 있다. 구글은 알파고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똑똑히 파악하자.

 어릴 때는 나무로 만든 기차부터 커서는 알파고까지, 장난감뿐 아니라 책으로도 놀고 돈으로도 놀아보고 세상을 가지고도 놀아야 한다. 엄마랑도 놀고 친구와도 놀고 선생님과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인종 구분 없이, 정치인, 예술가와도 놀면 된다. 그들의 신기한 재료와 놀고, 그들의 생각과 놀며, 그들의 주장과 작품과도 한껏 놀아야 한다. 놀다 보면 알파고에 위축되지 않고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나’라는 인간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알파고를 비롯한 세상 모든 존재들과 공존(共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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