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꾸는 꿈
여성의 날 꾸는 꿈
  • 김혜란
  • 승인 2016.03.09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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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한 개그맨이 예능프로그램에서 촌철살인 ‘가모장 퍼포먼스’를 한다. 여성이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기존 한국사회의 남성우월편견을 180도 거꾸로 표현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여자가 하는 일에 너무 토를 달아’라든가, ‘어딜 감히, 남자가 돈 쓰는 거 아니야’, ‘남자가 조신하니 살림 좀 해야지’,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써!’, ‘남자 목소리가 담을 넘으면 패가망신한다’ 등등…. 물론, 이 개그맨은 여성이다.

 비록 잠시지만 볼 때마다 속이 시원하다. 역지사지의 가치를 보여준다.

 올해 3ㆍ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은 한국사회 여성들은 유난히 ‘조신하게’ 대회를 치르는 분위기였다. 국가대사인 총선이 바로 코앞인 데다가 북한이 도발을 언제 할지 모르고 석유값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왜 한국 여성들은 1년에 한 번인 여성의 날에 온갖 사람 눈치 다 보면서 기념하고 잔치하는 것일까. 내 생각이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일 것 같다.

 ‘유리천장 지수’라는 말이 있다. 고등교육과 남녀 임금 격차, 기업 임원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을 합해서 산출한 점수다. 2016년도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OECD 국가 29개 나라 중 29등이다. 남녀 임금의 격차는 10년간 꼴찌다.

 개그맨의 이야기를 더 해 보자. 그의 대사와 행동이 좋은 이유는 속이 시원해져서인데, 고개만 돌리면 더 답답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그 방법이 그것을 가르쳐준 남성과 똑같이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기나긴 세월 동안 이 땅의 남성들이, 남자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 여성들에게 냈던 목소리와 행동의 격이 똑같다. 거꾸로, 그대로 말장난과 행동으로 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 상처를 똑같이 돌려주는 것은 응징이고 복수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무슨 예능프로그램에다 대고 오랜 세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답을 내놓으라 하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보고 나서 더 답답해지니 하는 말이다. 사이다를 두 병 먹어야 하나….

 남편이나 남자상사의 폭력적인 언사에 진저리치면서도 어느새 자녀와 후배에게 그런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자신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란 여성들도 꽤 있을 것 같다. 살면서 닮아가고 시간이 가면 세포에 각인된다. 인간은 배우면 안 되는 것까지도 배우는 것이 불행이다.

 주변에서 유리천장을 향해 질주하는 여성들을 만날 때가 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상냥한 여성의 모습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남성들보다 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성공의 비결로 쓰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육아휴직을 쓸 수도 없고, 경력 단절로 다시 취업이 어려우며, 승진에서도 불이익을 당하는데 어째 여성이 독해지지 않고 성공을 꿈꿀 수 있겠나 싶다. 하지만 대안을 찾지 않으면 남성들의 폭력적인 DNA는 여성들에게도 고스란히 박히고 말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있되, 그 차이로 인한 차별이 없는 사회가 구현될 방법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도 요즘은 그냥 인간 개인 각각의 차이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 성차별이 심각하게 존재하는 것은 대단히 정치적인 이유라고 본다. 세계여성의 날이 만들어진 것도 108년 전 미국에서 섬유노동자들의 선거권과 조합 만들 권리를 요구하면서부터였다.

 선거 때만 되면 여성의 표심을 사려고 후보들이 애를 쓴다. 외모로, 혹은 유머나 사교 기질로 환심을 사려고 한다. 웃음 많고 감정적이며 정 많은 한국 여성의 강점을 집중 타겟으로 표를 따낸다. 일단 웃기면 웃어주고 등도 두드려 줘가며 그들을 격려하자. 지금 안 보면 후보의 그런 모습 언제 또 보겠는가. 선거 끝나면 그 손 잡아볼 일 언제 오겠는가. 단, 표는 냉정하고 치열하게 판단해서 찍자. 내 한 표 잘 행사하는 일에서부터 우리 사회 여성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사이다 같은 개그맨의 ‘가모장 개그’를 살짝 원망했지만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그의 개그에서 여성의 미래를 위한 해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강점은 부드럽고, 함께 할 줄 알고, 폭력적이지 않고 유연하다. 그 평화의 에너지로 남성들을 비롯한 세상을 향해 차별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여전히 세상은 남성 위주로 돌아가지만 여성들은 그 거꾸로인 여성 위주의 세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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